'찍먹'하는 베이글? 뉴욕에서 베이글을 먹는 새로운 공식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뉴욕 마스터예요.
‘뉴욕의 공원’하면 떠오르는 공원은 어디인가요? ‘센트럴 파크’가 가장 먼저 떠오를 거예요. 뉴욕의 유명한 랜드마크니까요. 하지만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원’을 묻는다면, 이 공원을 손꼽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바로 ‘브라이언트 파크(Bryant Park)’예요.
맨해튼 미드타운의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위치한 브라이언트 파크는 도심 속 오아시스로 통해요. 날씨가 온화한 계절에는 무료 영화 상영이나 요가 수업, 패션쇼 등의 행사가 열리기도 하고, 겨울에는 잔디밭이 야외 스케이트장으로 바뀌기도 해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홀리데이 마켓이 열려 연말의 설렘을 더하고요. 게다가 공원 바로 앞에 ‘뉴욕 공립 도서관’까지 있어 함께 방문하기에도 좋아요.
그런데 브라이언트 파크가 처음부터 이렇게 평화로웠던 건 아니에요. 브라이언트 파크는 뉴욕의 공공 공간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은 장소로 손꼽히는데요. 브라이언트 파크는 오아시스는 커녕, 한때 노숙자, 마약 중독자들로 가득한 황무지 같은 곳이었어요. 범죄율과 마약 거래가 잦아 ‘니들 파크(Needle park)’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죠. 헤로인 주사 바늘에서 딴 별명이에요.
이랬던 브라이언트 파크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요? 1992년, 비영리단체 ‘브라이언트 파크 코퍼레이션(이하 BPC)’이 이 공원에 대한 종합 계획에 착수한 게 시작이었어요. 부지 관리, 공익 프로그램, 그리고 라이프스타일 사업이 포함된 7년짜리 마스터플랜이 세워졌죠. 그리고 이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에서 중추 역할을 한 게 다름 아닌 브라이언트 파크 주변의 ‘빵집’들이었어요.
빵집은 좋은 냄새가 나요. 심지어 빵집들이 모여 있으면 골목 전체에 구수한 냄새가 퍼지죠. 게다가 빵집은 ‘위험하지 않다’는 신호이기도 해요. 일상적으로 빵을 사러 오는 주민들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BPC는 브라이언트 파크 바로 옆, 웨스트 40번가에 빵집들을 유치하기 위해 나섰어요. 이후 이 거리는 ‘헤리티지 그랜드 베이커리’, ‘레이디 엠 케이크 부티크’, ‘르 팽 코티디앵’, ‘안젤리나 파리’ 등 유명 베이커리들이 자리를 잡았죠.
이쯤에서 이런 의문이 들어요. 브라이언트 파크가 빵집을 원했던 것과 별개로, 어떻게 이렇게 여러 빵집들이 모여 하나의 거리를 완성하고, 비즈니스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비슷한 가게들이 한 데 모여 유사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리해 보이기도 하잖아요. 플레이어들이 많아 경쟁이 심할 테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동종 브랜드를 모으는 리테일 전략은 사실 어느 정도 검증된 전략이에요. 어느 정도 규모의 상권이 형성되어야 모두가 같이 힘을 받을 수 있거든요.
게다가 브라이언트 파크는 미드타운의 주요 입지로 주변의 직장인뿐만 아니라 관광객도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위치예요. BPC에 따르면 브라이언트 파크의 연간 방문객은 약 1,200만 명에 달하죠. 이처럼 유동 인구가 꾸준히 유지되니, 이 지역의 베이커리들은 이 거리에서 경쟁보다 기회를 먼저 본 거예요. 덕분에 한때 버려진 녹지 공간이었던 브라이언트 파크는 웨스트 40번가의 활기를 지렛대 삼아 지금의 새로운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어요.
브라이언트 파크의 베이커리들이 공원의 입지를 바꾸어 놨다면,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베이커리도 있어요. 뉴욕의 대표적인 빵, ‘베이글’로요. 보통 뉴욕 베이글하면 베이글을 반으로 갈라 베이글 두께만큼 혹은 그보다 두껍게 채운 크림치즈 스프레드가 떠오르죠. 그런데 이 베이글 가게에서 파는 베이글의 모습은 달라요. 과연 어떤 베이글이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지, 함께 뉴욕으로 호핑해 볼까요?
‘찍먹’하는 베이글? 뉴욕에서 베이글을 먹는 새로운 공식
뉴욕에는 유명한 베이글 가게들이 많아요. ‘에싸 베이글(Ess-a-bagel)’, ‘앱솔루트 베이글(Absolute Bagels)’, ‘머레이스 베이글(Murray’s Bagels)’ 등이 대표적이에요. 몇몇은 뉴요커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몰려들어 늘 인산인해를 이루죠. 보통 이렇게 인기가 많을 경우 프랜차이즈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베이글 가게들만큼은 인기에 비해 이상하리만큼 프랜차이즈화된 사례가 없어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블룸버그의 분석에 따르면 베이글 비즈니스가 노동 집약적이고 마진이 낮기 때문이라고 해요. 베이글은 손으로 반죽을 성형하고, 데쳐서 굽는 과정을 거쳐요. 그래야 쫄깃하면서도 촉촉한 최적의 식감을 구현할 수 있거든요. 여기에 손님들이 선택한 스프레드를 골고루 샌딩하거나 토핑을 넣어서 내어주는 것도 사람의 몫이죠. 이처럼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보니, 자연스레 인건비가 많이 드는 빵이에요.
게다가 뉴욕에서 베이글은 서민적인 빵이라 플레인 베이글 기준으로 가격이 개당 1달러(약 1,500원) 남짓이에요. 크림치즈를 더한다고 해도 3~4달러(4천~6천원) 사이죠. 만드는 데에 인건비는 많이 들고,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선이 낮으니 마진을 올리기가 어려운 구조예요. 물론 크림치즈 외에 이것 저것 토핑을 넣어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하기도 하지만, 인건비가 높아 여전히 햄버거, 피자, 치킨 등에 비해 마진이 낮아요.
그런데 이런 고질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베이글 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브랜드가 있어요. 2020년에 코네티컷에서 시작해 2023년에 뉴욕으로 진출한 ‘팝업 베이글(PopUp Bagels)’이에요. 팝업 베이글은 최근 6천만 달러(약 900억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 받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죠.
벌써 매장 수만 16개로, 그 중 7개가 베이글의 격전지인 뉴욕에 있어요. 팝업 베이글은 심지어 향후 4년 내에 300개의 매장을 오픈할 계획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프랜차이즈화를 선언했는데요. 그렇다면 이 베이글 가게는 업계의 암묵적 약점을 어떻게 극복한 걸까요?
먼저 팝업 베이글은 베이글을 먹는 방식을 바꾸었어요. 원래 베이글은 반으로 갈라 크림치즈를 발라 먹는 게 전형적인 방식이에요. 반면 팝업 베이글은 ‘쥐고(Grip), 찢고(Rip), 찍어(Dip)’ 먹어야 해요. 팝업 베이글에서 베이글을 구입하면 자르지 않은 베이글을 통째로 ‘슈미어(Schmear)*’와 함께 내어주거든요. 슈미어는 뚜껑이 있는 낮은 컵에 담겨 제공되죠. 그러면 손님이 직접 베이글을 쥐고, 찢어서, 컵에 든 슈미어에 찍어 먹는 거예요.
*슈미어: 버터, 크림치즈 등 베이글에 발라 먹는 스프레드를 통칭해 부르는 말이에요.
갓 구워 쫄깃한 베이글을 직접 찢어 먹는 쾌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저격했어요. 반으로 갈라 크림치즈를 바른 베이글이 줄 수 없는 오감만족이었죠. 게다가 컵에 듬뿍 담긴 슈미어 위에 베이글을 꽂은 비주얼은 SNS 포스팅에도 제격이었고요. 트렌디한 Z세대의 SNS를 점령하는 건 시간문제였어요.
베이글을 즐기는 이 신선한 방식은 매장 운영 관점에서도 효율적이에요. 점원들이 베이글을 굽고 빠르게 포장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되니 베이글을 완성하는 데에 드는 시간이 줄어 들죠. 더 나아가 메뉴까지 단순화해 운영 효율을 또 한 번 높여요. 각종 햄, 연어, 야채 등 다양한 속재료를 넣은 샌드위치 메뉴나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는 다른 베이글 매장과 달리, 팝업 베이글은 베이글과 커피만 판매하거든요. 그러니 팝업 베이글에는 인력도, 장비도, 공간도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단순한 메뉴 구성은 다양한 베이글과 슈미어 조합, 그리고 한정판 슈미어로 극복해요. 팝업 베이글의 한정판 슈미어는 1주 단위로 출시되는데요. 지난 할로윈 주간에는 ‘호박 초콜릿 침 크림치즈’와 ‘캔디 콘 버터’를 한정판으로 선보였어요. 그 전 주의 한정판은 ‘솔티드 메이플 바나나 브레드 슈미어’와 ‘갈릭 로즈마리 버터’였고요. 시의적절하고,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슈미어로 고객들의 재방문을 유도하죠.
하지만 베이글과 슈미어, 그리고 커피만으로는 객단가를 높이기 어렵지 않을까요? 여기서 팝업 베이글은 킥을 발휘해요. 팝업 베이글은 베이글을 1개가 아니라 베이글 3개와 슈미어 1통, 베이글 6개와 슈미어 1통, 베이글 12개와 슈미어 2통 단위로 판매하는데요. 최소 주문인 베이글 3개와 슈미어 1통의 가격은 13~17달러(약 1만9천~2만5천원) 사이죠. 베이글의 개당 가격은 다른 가게들과 비슷하더라도, 단위 경제성이 높아졌기에 사업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거예요.
팝업 베이글은 베이글을 즐기는 방식을 바꾸고, 메뉴를 단순화해 노동집약적 구조에서 탈피했어요. 물론 소비자들이 환영할 만한 방식으로요. 여기에 번들 판매를 통해 객단가를 높였죠. 과연 미래에는 찍먹이 베이글을 먹는 기본 방식이 되는 날이 올까요? 팝업 베이글이 열어갈 베이글의 새 시대가 궁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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