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소중함으로 바꾸는, 국민 과자의 노련미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뉴욕 마스터예요.
비즈니스 씬에서 ‘국민’이라는 수식어는 양날의 검이에요. 그만큼 범국민적 사랑을 받는 제품 혹은 서비스라는 의미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대중적이라 돋보이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국민 과자’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사랑을 받아온 과자지만, 트렌디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요. 그렇다보니 드라마틱한 주목을 받기 어렵기도 하고요.
그런데 미국의 국민 과자 브랜드 ‘치즈잇(Cheez-It)’은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해요. 1921년에 탄생한 치즈잇은 가로, 세로 2cm 남짓한 정사각형 모양의 치즈맛 크래커인데요. 자꾸만 손이 가는 바삭함과 짭짤함으로 수십 년간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아 왔지만, 일상적인 간식으로 먹는 과자에 불과하죠. 특히 쿠키, 케이크 같은 화려하고 달콤한 디저트가 각광받는 연말 시즌에는 치즈잇의 존재감이 짠할 정도예요. 그렇다면 치즈잇은 평범한 익숙함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최근 치즈잇은 신제품이자, 연말 한정판으로 미국인들의 눈을 제대로 사로잡았어요. 연말에 미국인들이 의례적으로 하나씩 구매하는 ‘진저브레드 하우스 키트’의 대체품을 출시했거든요. 진저브레드 하우스 키트는 진저브레드로 입체적인 집 모양 쿠키를 만들 수 있는 키트인데요. 치즈잇이 진저브레드 대신 치즈잇 크래커를 사용해 집을 만들 수 있는 키트를 출시한 거예요. 달콤한 흰색의 아이싱, 녹색과 빨간색 캔디 조각 등이 포함되어 있어 연말 무드를 연출하기에 손색이 없어요. 게다가 과자계의 필승 조합, ‘단짠’을 구현했으니, 평소 달기만한 진저브레드 하우스 키트에 질렸던 소비자라면 한 번쯤 시도해 볼만 하죠.
연말에 사람들이 진저브레드 하우스 키트를 하나씩 구매한다는 점에 착안한 시도예요. 사람들의 소비 패턴을 자연스럽게 파고든 거예요. 익숙한 치즈잇이지만, 하우스 키트로 만나는 건 색다른 경험이죠. 그 결과물의 맛 또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신선하고요. 덕분에 치즈잇은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을 바꾸는 힘든 길을 가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연말 일상에 침투할 수 있었어요.
또한 연말 시즌 전인 지난 10월, 뉴욕에서는 치즈잇이 무려 ‘클럽’으로 변신하기도 했는데요. 로어 맨해튼에 ‘스튜디오 치즈(Studio Cheez)’라는 이름의 팝업을 연 거예요. 실제 한 클럽을 빌려 진행된 이 팝업에서는 ‘치즈티니’, ‘치자리타’ 등 치즈잇이 들어간 칵테일, 치즈잇을 활용한 각종 안주 등 풍성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었어요. 명색이 클럽인 만큼 치즈잇을 테마로 한 DJ 부스, 치즈잇 그루브 룸 등 춤을 출 수 있는 공간과 시설도 마련되었죠. 이 공간에는 배고플 때마다 무제한으로 치즈잇을 먹을 수 있는 디스펜서도 있었고요.
이 스튜디오 치즈 팝업은 사실 치즈잇의 브랜드 캠페인의 일부인데요. ‘갈망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Cravings can happen anywhere)’는 메시지를 클럽을 모티브로 풀어낸 거죠. 그런데 캠페인 맥락을 알고 나면 그 의미가 더욱 공감이 돼요.
일련의 광고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해요. 소설의 하이라이트를 읽다가도, 여자친구의 아빠를 만나는 순간에도, 심지어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거나 엄숙한 장례식에서 고인을 추모하다가도 갑자기 치즈잇이 먹고 싶어지죠. 실제로 좋아하는 과자에 대한 갈망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기도 하니까요. 차마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위트있게 짚어 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죠.
치즈잇은 광고와 팝업 이벤트를 통해 일상적으로 먹는 과자를 재정의했어요. 특별할 게 없는 과자라기보다는 상황을 가리지 않고 먹고 싶어지는 과자라는 것으로요. 그만큼 치즈잇은 일상에서 더 소중하고, 가까이 하고 싶은 과자죠. 치즈잇은 소비자들이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않도록 치즈잇의 가치를 자꾸만 일깨워줘요. 어쩌면 그게 바로 치즈잇이 수십 년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오늘의 뉴욕 호핑 어떠셨나요? 뉴스레터가 재밌었다면 아래에 있는 ‘좋아요(LIKE)’를 누르거나, 친구 또는 회사 동료에게 뉴스레터를 공유해 주세요!









독보이다 --> 돋보이다
맞춤법에 맞지 않는 단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