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호핑족’ 가고, ‘잡 허깅족’ 온다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뉴욕 마스터예요.
‘뉴욕 지하철’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어쩐지 도시의 위상에 비해 지하철만큼은 인상이 쾌적하지는 않아요. 그도 그럴 것이, 뉴욕의 지하철역은 오물과 쥐 그리고 범죄의 온상으로 악명이 높으니까요. 심지어 <뉴욕 타임스>의 한 기사에서조차 “뉴욕 지하철은 결코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며, 필요할 때만 조금씩 경험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할 정도죠.
하지만 ‘쾌적’이 아니라 ‘재치’의 관점이라면 어떨까요? 어쩌면 뉴욕 지하철이 설욕의 기회를 얻을 지도 모르겠어요. 뉴욕 지하철역 곳곳에는 웃음 짓게 하는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그랜드 아미 플라자 역에는 공룡이 과자, 잡지, 담배 등을 파는 ‘렉스의 다이노 스토어(Rex’s Dino Store)’가 있어요. 물론 진짜 점원도, 진짜 가판대도 아니에요. 하지만, 과자 도리토스 대신 ‘메테오리토스(Meteoritos)’, 담배 말보로 대신 ‘스날보로(Snarlboro)’, 잡지 메트로폴리탄 대신 ‘다이노폴리탄(DINOPOLITAN)’ 등 공룡과 관련된 말장난이 위트있는 페이크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죠.
이는 뉴욕 지하철 관리 주체인 ‘MTA(Metropolitan Transportation Authority)’가 주도하는 ‘빈 가판대 활성화 프로그램(Vacant Unit Activation Program)’중 하나예요. 렉스의 다이노 스토어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인 아키바 레퍼트와 사라 캐시디와의 협업으로 탄생했죠.
그뿐 아니라 MTA는 지하철역의 빈 가판대들을 예술 및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해요. ‘50번가 역’에 선보인 예술가 트레이시 존슨의 설치 미술 ‘안전한 공간(Safe Space)’, ‘81번가 자연사 박물관 역’의 ‘사운드부스(Soundbooth)’ 등이 대표적이에요.
사운드부스는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버스킹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에요. 버스킹이 자연스러운 뉴욕 지하철역의 문화에 착안한 아이디어죠. 이처럼 MTA는 지하철역의 빈 공간을 활용해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파트너들을 찾고 있어요.
뉴욕만의 유머 코드는 디스토피아 같던 지하철역도 유쾌하게 바꾸어 놔요. 오히려 정돈되고 깨끗한 역이었다면 그 재미가 덜했거나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죠. 이처럼 뉴욕은 완벽하지는 않아도, 기꺼이 개성 있는 창의력의 캔버스가 되는 도시예요. 이번 주 뉴욕의 비즈니스 씬에서는 어떤 크리에이티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트렌드: ‘잡 호핑족’ 가고, ‘잡 허깅족’ 온다
📍브랜드: 뉴욕 타임스가 구독자를 늘리려 꺼내든 뜻밖의 무기
📍디자인: 와인 애호가들의 원픽, ‘팩맨’을 닮은 수세미
[트렌드] ‘잡 호핑족’ 가고, ‘잡 허깅족’ 온다
미국 Z세대는 ‘잡 호핑(Job hopping)’하는 세대였어요. 단어 뜻 그대로 새로운 직장으로 빠르게 옮겨 다니는 게 유행이라고 할 정도로, Z세대의 빠른 이직은 당연하게 여겨졌죠. 그런데 이제 이 잡 호핑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대신 ‘잡 허깅(Job hugging)’이 대세가 되었어요. 갑자기 직장을 끌어 안는다니, 무슨 일일까요?
잡 허깅은 이직을 노리는 것과는 정반대로, 지금 직장에 남고 싶어하는 의향을 의미해요. HR 전문 컨설팅 회사 ‘이글 힐 컨설팅(Eagle Hill Consulting)’이 2025년 7월에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적어도 향후 6개월 간 현재 직장에 머무를 계획이라고 해요. 특히 Z세대 직원들이 현재 직장에 남을 의향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요.
그렇다면 왜 이런 변화가 생겨난 걸까요? 결론적으로는 고용 시장이 얼어 붙으면서 시장 불확실성이 크게 올라갔기 때문이에요. 미국 기업들은 2025년 7월에만 약 6만2천 개의 일자리를 삭감했어요. 2025년 1~7월까지 8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줄었으며, 이는 2024년 한 해 동안 사라진 일자리보다 더 많은 수치예요.
트럼프 행정부의 글로벌 관세 부과도 영향을 끼쳤어요. 특히 자동차 업계, 소매업계가 일자리 감축을 발표하며 그 이유 중 하나로 관세 부과를 꼽았거든요. 높아진 관세로 인해 캐나다, 멕시코 등에 있던 자동차 조립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되면, 이 공장으로 부품을 수출하는 미국 회사가 타격을 받아 일자리를 줄이게 되는 식의 연쇄 효과가 일어나고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AI의 발전 또한 인력 감축을 야기했어요. 특히 테크 업계에서 그 여파가 눈에 띄어요. 테크 업계는 2025년에만 벌써 9만 명의 인원을 감축했어요. 이는 작년 동 기간 대비 36% 증가한 수치로,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페이팔 등 테크 대기업들이 대규모로 인원을 줄인 결과죠. 물론 이런 감원이 모두 AI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테크업계에서 AI가 일정 부분 인력을 대체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이미 고용한 인력도 해고하는 상황에, 신규 고용이 활발할 리 없어요. 2025년 7월 한달 간 창출된 일자리는 7만3천 개로, 올해 초 월 평균 11만1천 개에 비해 줄었죠. 해고는 늘어나고, 채용은 줄어드니 쉽게 이직을 꿈꾸기가 어려운 상황인 거예요. 잡 허깅 트렌드는 Z세대의 성향이 변화했다기보다, 시장 상황에 따른 단기적인 흐름으로 보여요. 당분간 잡 허깅 트렌드가 유지되겠지만, 이 트렌드가 다시 잡 호핑으로 바뀐다면 경제가 좋아졌다는 신호가 아닐까요?
[브랜드] 뉴욕 타임스가 구독자를 늘리려 꺼내든 뜻밖의 무기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 이하 NYT)>는 뉴욕에 본사를 둔 미국의 일간지예요. 뉴욕을 대표하는 미디어죠. 1851년, 종이 신문으로 시작해 현재 인쇄 발행 부수 기준 미국 내 2위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의 NYT를 있게 한 건 종이 신문이 아니에요. 전통적인 신문에서 디지털 구독 서비스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덕분이죠.
2025년 8월 기준, NYT는 1,188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어요. 그 중 1,130만 명이 온라인 구독자예요. 단순히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을 했다고 해서 가능한 결과는 아니에요. 여기에는 깊은 역사, 양질의 콘텐츠는 기본이고 뜻밖의 일등공신이 있었어요.
바로 ‘게임’이에요. NYT는 게임을 통해 구독자의 참여를 유지하고 이탈률을 줄이는 데에 성공했거든요. 사실 NYT와 게임의 인연은 꽤 오래되었어요. 1942년부터 일요일 판에 ‘크로스워드 퍼즐’을 싣는 것으로 시작되었죠. 당시에는 신문 구독자들의 단순 재미를 위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들어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면서 게임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기 시작했어요. 온라인 게임은 신규 구독자를 NYT로 이끄는 관문이 되었죠. NYT의 게임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유료 구독을 하기 시작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NYT에 접속했거든요. 이에 NYT는 오리지널 게임을 개발하거나, 인기 있는 게임을 인수하기 시작했어요. 급기야 2014년에는 NYT에서 만든 게임 모음인 ‘뉴욕 타임스 게임’을 론칭했죠.
그 이후 뉴욕 타임스 게임은 지속적으로 라인업을 늘렸어요. 가장 최근의 행보를 볼까요? 지난 8월 18일에는 NYT 최초의 오리지널 로직 퍼즐 ‘핍스(Pips)’를 공개했어요. 핍스는 도미노를 퍼즐 기반으로 변형한 게임으로, 일련의 조건을 충족하는 패턴으로 도미노를 배치해야 해요. 스도쿠처럼 균형이 중요하죠. 시간 제한 없이 하루 3가지 퍼즐을 풀 수 있는 핍스는 사람들이 NYT를 찾는 ‘습관’을 형성하고 있어요.
이제 NYT에서 게임은 뉴스보다 더 많은 사용자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어요. 단적으로 게임과의 묶음 구독은 전년 대비 29%나 증가했지만, 뉴스 전용 구독은 감소했죠. 그럼에도 NYT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미디어 회사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요. 다만 게임이라는 인터렉티브한 요소를 통해 구독자들의 습관을 형성할 계획이죠. 이처럼 부가 서비스는 추가 매출의 창이 될 뿐만 아니라 메인 서비스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가 되기도 하죠.
[디자인] 와인 애호가들의 원픽, ‘팩맨’을 닮은 수세미
와인 애호가들에게 가슴이 아픈 순간들이 몇 가지 있어요. 그중 하나는 설거지를 하다 아끼는 와인잔이 깨졌을 때예요. 와인잔은 큰 압력을 받을 때 깨지기 쉬운데, 애석하게도 비싼 고급 와인잔일 수록 림(Rim)과 스템(Stem)이 얇아 깨질 확률이 더 올라가죠. 한 잔에 수십 만원을 호가하는 와인잔이 깨질 때면, 내 마음도 와장창 함께 깨지는 것 같아요.
뉴욕에도 같은 고충을 겪던 와인 애호가가 있었어요. 국제 공인 와인 전문가 자격 시험인 WSET 레벨 3까지 획득할 정도로 와인에 진심이었던 리 코자니스(Lee Kojanis)예요. 그는 지난 몇 년간 와인잔을 세척하다 수백 달러짜리 와인잔을 최소 10개 이상 깨뜨렸어요. 그도 짜증이 났지만, 그의 아내 다니엘 오렐라나(Daniele Orellana)는 더 짜증이 났죠.
더 이상 이 짜증을 견디고 싶지 않았던 부부는 와인잔을 세척하는 도구를 디자인하기로 해요. 당시 시장에는 크게 2가지 수세미가 있었어요. 하나는 기능은 좋지만 심미성이 떨어지는 제품, 또 다른 하나는 보기에는 좋아도 고급 스템웨어를 세척하기에는 소재가 거칠거나 모양이 적합하지 않은 제품들이었죠. 리와 다니엘은 심미성과 기능성을 모두 갖춘 스템웨어 전용 수세미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선보인 게 와인잔 전용 수세미 ‘미츠(Mitts)’예요. 미츠의 핵심은 팩맨처럼 생긴 디자인이에요. 부리 부분에 와인잔의 얇은 림, 스템, 베이스를 끼워 닦기 편하게 설계한 거예요. 그리고 이 부리 부분을 닫으면 와인잔의 보울(Bowl) 안으로 수세미가 쏙 들어가 잔 바닥까지 깨끗이 닦을 수 있죠. 수세미의 전체적인 사이즈는 평균적인 와인잔 깊이에 맞췄고, 보다 견고한 그립감을 위해 손가락을 끼울 수 있는 구멍도 만들었어요.
미츠 수세미는 현재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출시되어 있는데요. 각각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상징하는 색깔이에요. 다만 실제 와인의 색보다 채도를 높여 팝한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심각하고 진중한 와인업계와 지루한 경향이 있는 주방용품으로부터 탈피하고, 와인 파티에 경쾌함을 더하고자 했거든요.
한편 미츠 수세미에는 받침대가 포함되어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수세미를 사용하지 않을 때 건조대처럼 사용하는 용도예요. 수세미로 와인잔을 닦을 때에는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잠시 벗어 놓는 보석 트레이의 역할을 하기도 하죠. 와인잔을 씻는 행위를 넘어 와인잔을 씻는 ‘상황’을 고려해 사용자가 겪을 수 있는 작은 불편함까지 해소한 거예요. 이 정도 세심한 디테일이라면, 와인의 섬세한 풍미를 즐기는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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