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형광펜은 아직도 진화 중? 문방구 총선거 수상작 3선!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도쿄 마스터예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사치가 된 시대예요. 휴식은 금물, 틈만 나면 자기 계발에 열을 올려야 할 것만 같죠. 하지만 때로는 쉬어 가는 시간이 필요해요. 비울 줄 알아야 비로소 채울 수 있으니까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도쿄에 멍 때리기 좋은 바가 문을 열어요. 이름하여 ‘봇토 쓰루 바(ぼーっとするバー)’. 일본어로 ‘멍 때리는 바’라는 뜻으로, 고객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쉬는 호사스러운 시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해요. 도쿄 히로오 지역에 위치한 갤러리 겸 카페, ‘문(Muun)’에서 8월 7일 단 하루,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만 운영될 예정이에요.
사전 예약을 통해 방문한 고객은 커피 또는 차 한 잔을 마시며 그야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요. 고객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멍을 때릴 수 있도록 디자인 스튜디오 ‘비트로(Vitro)’의 ‘듀(DEW)’ 조명 장치를 설치할 예정이에요. 듀는 은은한 불꽃을 뿜어내는 일본의 전통 불꽃놀이인 ‘센코하나비(線香花火)’를 본떠 만든 조명이죠.
어두운 공간에서 이 조명을 켜면,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며 빛을 분산시켜요. 천천히 떨어지는 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명상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죠. 듀는 디지털 기기에서 눈을 떼고, 아날로그인 빛의 흔들림이 가지는 치유의 힘을 느껴보라는 취지에서 조명을 새롭게 디자인했어요.
직접 봇토 쓰루 바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영상을 통해서나마 멍을 때리며 의식을 비웠나요? 그렇다면 이제는 다시 도쿄의 시간으로 머리를 채울 차례예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서울에 앉아 도쿄의 트렌드를 읽는 호사를 누려 볼까요?
📍트렌드: 봉제인형 유치원? 없던 시장을 여는 ‘누이카츠’
📍브랜드: 매년 여름, 바리스타 없는 카페가 문을 여는 이유
📍 디자인: 일본 형광펜은 아직도 진화 중? 문방구 총선거 수상작 3선!
[트렌드] 봉제인형 유치원? 없던 시장을 여는 ‘누이카츠’
부드러운 촉감과 정감 가는 외모의 봉제인형은 인형 그 이상이에요. 친구나 가족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하죠. 특히 최근들어 ‘젤리캣’, ‘스퀴시멜로’ 등 봉제인형 브랜드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봉제인형과 애착을 형성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어요. 인스타그램에서 봉제인형을 뜻하는 #plushies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게시물만 302만 건이 나올 정도예요.
이처럼 봉제인형을 사람처럼 소중히 대하며 함께 추억을 만드는 문화를, 일본에서는 ‘누이카츠(ぬい活)’라고 불러요. 봉제인형을 뜻하는 ‘누이구루미(ぬいぐるみ)’와 활동을 뜻하는 ‘카츠(活)’를 합친 조어예요. 원래는 일부 마니아들만 즐기던 이 누이카츠가, 최근 일본 Z세대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요. Z세대 전문 조사 기관 ‘시부야109랩’의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무려 80%가 누이카츠 경험이 있다고 하죠.
그런데 누이카츠가 일상을 SNS에 공유하는 Z세대의 문화와 결합하며 재밌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SNS에 적합한 누이카츠 전용 영상 템플릿이 생겨나기도 하고, ‘봉제인형 촬영’을 뜻하는 #ぬい撮り, ‘봉제인형 여행’을 의미하는 #ぬい旅 등의 새로운 해시태그도 생겼죠.
여행지에서 봉제인형이 뒤돌아 보는 #振り向き界隈 숏폼이 유행 중이에요.
무엇보다 누이카츠를 SNS에 올리게 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봉제인형용 패션 아이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건 물론, 바쁜 주인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서비스들도 주목을 받고 있죠. 주인 대신 봉제인형과 함께 여행을 하는 ‘봉제인형 여행 대행’, 소풍, 운동회 등의 이벤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봉제인형 유치원’ 등이 대표적이에요. 핵심 결과물은 ‘사진’으로, 누이카츠와 SNS 문화가 결합되면서 생겨난 현상이에요.
그뿐 아니라 도쿄에는 누이카츠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카페도 있는데요. 도쿄에 위치한 ‘작은 루의 카페(Little Lou’s Cafe)’예요. 이 카페의 점장이자 파티시에인 ‘루’부터가 여우 봉제인형이에요. 또한 이 카페에는 메뉴판도, 메뉴도 봉제인형용의 작은 사이즈가 준비돼 있어요. 메뉴를 주문하면 봉제인형용 작은 사이즈와 사람용 큰 사이즈, 두 가지를 함께 서빙해주죠.
매장 곳곳에는 봉제인형을 위한 옷, 소품, 거울 등이 있어 봉제인형과 함께 쇼핑을 하거나, 봉제인형용 포토스팟에서 인증샷까지 제대로 남길 수 있죠. 봉제인형에 생명이 있다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처럼 꾸며 놓았어요. 봉제인형을 위한 진심과 디테일들은 보호자 고객들의 마음을 저격하기에 충분해요.
누이카츠는 전에 없던 문화는 아니에요. 하지만, 젊은 세대가 이 문화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하는 중이에요. 그 과정에서 재밌는 트렌드가 만들어지고 있고요. 앞으로 누이카츠는 또 어떤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 낼까요?
[브랜드] 매년 여름, 바리스타 없는 카페가 문을 여는 이유
2023년부터 매년 여름, 도쿄 오모테산도에는 바리스타 없는 카페가 약 3주간 문을 열어요. 수준급 카페들의 격전지, 오모테산도에서 바리스타 없는 카페라니, 승산이 있을까요? 뜻밖에도 인기는 어마어마해요. 2024년에는 팝업 기간동안 1만 명 이상의 고객들이 이곳을 찾았죠. 이 카페는 2025년, 올해도 어김없이 문을 열었어요.
카페의 이름은 ‘히미츠노드립(ひみつのドリップ)’. ‘비밀의 드립’이라는 뜻이에요. 아이스 커피 전문점인데, ‘비밀스럽게’ 커피를 팔아요. 고객이 커피 메뉴를 선택하고 계산하면, 번호가 적힌 토큰을 주는데요. 이 토큰을 흰색 벽면에 ‘주문(Order)’이라고 쓰여 있는 작은 물방울 모양 창구에 떨어뜨려요. 그럼 바로 위 더 큰 물방울 모양 창구로 주문한 커피를 내어주는 식이에요. 고객은 공식적으로는 커피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가 없죠.
그렇다면 카페를 이렇게 운영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 카페는 일본의 커피 회사 UCC에서 만드는 캡슐 커피, ‘드립 팟(DRIP POD)’과 캡슐 커피 머신 ‘드립 팟 유비(DRIP POD YOUBI)’를 홍보하기 위한 팝업 카페거든요. 바리스타 없이 캡슐커피만으로 수준급의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걸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에요.
히미츠노드립의 인기에는 카페의 ‘테마’가 큰 역할을 해요. 그저 캡슐 커피로 내린 맛있는 아이스 커피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어디에도 없는 메뉴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완성도 높은 맛으로 만족감을 주거든요. 올해 히미츠노드립의 테마는 ‘로컬 과일 커피’예요. 과일 커피는 최근 20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커피로, 커피에 과일을 더한 음료죠.
히미츠노드립은 이번 팝업을 위해 드립 팟으로 내린 커피에 일본 각지의 과일을 섞어 만든 15종의 과일 커피 메뉴를 개발했어요. 이때 모든 과일 커피에 같은 커피를 사용한 게 아니라, 각 과일마다 어울리는 드립 팟을 매칭했어요. 맛의 완성도를 높여 드립 팟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죠. 예를 들어 후쿠오카 아마오우 딸기와는 ‘블루 마운틴 블렌드’를, 오키나와 파인애플 및 망고와는 ‘하와이 코나 블렌드’를 섞는 식이에요.
게다가 각 음료의 레시피를 아낌없이 공개해 사람들이 직접 집에서도 과일 커피를 만들어 먹도록 했어요. 각 과일마다 어울리는 풍미의 드립 팟을 매칭했기 때문에, 다양한 캡슐 커피 중에서도 드립 팟의 커피를 선택할 이유가 되죠. 드립 팟의 활용도를 높이는 동시에, 드립 팟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 설 자리를 넓힌 셈이에요. 매년 여름이면 기다려지는 히미츠노드립. 내년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까요?
[디자인] 일본 형광펜은 아직도 진화 중? 문방구 총선거 수상작 3선!
일본에서는 매해 ‘문방구 총선거’라는 투표가 열려요. 올해로 벌써 13번째를 맞이했죠. 이 대회는 라이프스타일 잡지 <겟나비(GetNavi)>가 주최하는 행사로, ‘일이나 공부,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문구’를 선정해요. 약 한 달간의 투표 기간 동안 문구 마니아들을 비롯한 일반 소비자들이 투표에 참여하죠.
문구 강국답게 수상 분야도 세분화되어 있어요. 문구의 ‘종류’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기능’에 따른 분류예요. 펜, 노트, 지우개 이런 식의 분류 대신, ‘기록하기’, ‘자르기·붙이기·바인딩’, ‘수납하기’ 등 7가지로 수상 영역을 나누는 거죠. 덕분에 결과가 더 직관적이고 흥미로워요.
올해의 ‘문방구 총선거 2025’에서는 총 74가지 문구들이 입상을 했어요. 그중에서도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수상한 문구류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형광펜’이에요. 강조하고 싶거나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밑줄을 그어 생각 정리를 돕는 형광펜은 나이와 영역을 불문하고 많이 쓰는 제품이죠. 그렇다면 2025년 일본에서는 어떤 문제점을 하이라이트하고 해결한 형광펜들이 주목을 받았을까요?
1️⃣ 레이메이 후지이 ‘켑트 키에라’
형광펜인듯 아닌듯, 형광펜의 기능을 하는 제품이에요. 2025년 1월에 발매된 따끈한 신상이지만, <문방구 총선거 2025> ‘표시하기·분류하기’ 부문에서 무려 1위를 차지했죠. 잉크가 번지거나, 끊기거나, 종이를 적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우개로 지워지기까지 하는 형광펜이에요. 비결은 ‘수정테이프’의 원리를 형광펜에 적용한 데에 있어요. 잉크 대신 컬러테이프를 종이 위에 붙이고 당겨서 긋는 테이프형 라인 마커죠. 게다가 2가지 컬러가 탑재되어 있어 용도에 따라 색을 구분해 쓸 수도 있고요.
2️⃣ 선스타 문구 ‘겹쳐쓰기 마커 데코트3’
<문방구 총선거 2025> ‘쓰기’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제품도 형광펜이었어요. 선스타 문구에서 나온 제품으로, 한쪽 끝은 팁이 납작한 형광펜이고, 반대쪽 끝은 필기용 얇은 팁의 형광펜이에요. 그리고 양 끝 형광펜 색이 민트와 핑크, 스카이블루와 오렌지 등으로 서로 달라 구분이 되면서도 잘 어울려요. 팁이 납작한 형광펜으로 넓은 선을 긋고, 그 위에 얇은 팁으로 글씨를 쓰는 용도죠. 이때 특수 안료를 써서 형광펜으로 그은 줄 위에 반대쪽 형광펜으로 글씨를 써도 색이 섞이거나 번지지 않는 장점이 있어요.
3️⃣ 파이롯트 ‘키레나(KIRE-NA)’
<문방구 총선거 2025> ‘쓰기’ 부문 2위마저도 형광펜에게 돌아갔는데요. 그 주인공은 파이롯트에서 출시한 키레나예요. 2024년 10월 처음 발매된 후 반년 만에 무려 200만 개의 판매고를 올린 제품이죠. 키레나는 형광펜 팁 양쪽에 투명한 플라스틱 가이드가 있어서 종이가 휘어 있어도 끝까지 반듯하게, 같은 폭으로 선을 그릴 수 있게 도와줘요. 게다가 종이 위에서 1초 만에 마르는 속건성 안료 잉크를 써서 볼펜으로 쓴 글씨 위에 밑줄을 그어도 글자가 번지지 않는 장점도 있고요.
오늘의 도쿄 호핑 어떠셨나요? 뉴스레터가 재밌었다면 비슷한 관심사나 취향을 가진 지인들에게 추천 부탁드려요. 내일은 상하이로 떠날 예정이에요. 상하이 호핑도 함께해 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