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결단의 각오로 정부와 정면승부까지? 이 브랜드가 민초들의 편에 서는 법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런던 마스터예요.
영국인들의 소울 푸드는 무엇일까요? 피쉬앤칩스가 대표적인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영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음식은 따로 있어요. 바로 ‘소시지 롤’이에요. 어느 정도냐면요, 영국의 많은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매년 6월 5일을 National Sausage Roll Day로 정해 소시지 롤을 다함께 먹죠. 그렇다면 소시지 롤은 어쩌다 국민 음식이 된 걸까요? 때는 2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어요. 생산성이 폭발했지만, 이면에는 노동자 계급의 혹독한 노동 환경이 있었죠. 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만큼, 노동자들도 톱니바퀴돌 듯 일해야 했어요. 밥 먹을 시간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죠. 시간이 있다해도 환경이 열악해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어려웠어요.
그런 노동자들에게 소시지 롤은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든든한 음식이었어요. 페이스트리 반죽에 소시지를 넣어 구워내 주머니에 넣어놨다가 일하는 중에라도 베어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비유하자면 주먹밥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러다보니 소시지 롤은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고, 그때 학습된 입맛이 200년 넘게 이어지면서 지금까지도 국민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는 거예요.
이처럼 소시지 롤은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인데요. 소시지 롤의 대명사가 된 브랜드가 ‘그렉스(Greggs)’예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쉽고 흔한 음식인데, 그렉스가 어찌 소시지 롤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냐고요? 숫자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져요.
2024년 그렉스의 매출은 무려 2조 원에 달해요. 판매량으로 보면 일주일에 250만 개가 팔리죠. 1년으로 환산하면 무려 약 1억 4천만 개예요. 영국 인구가 약 7천만 명이니 영국 국민이 1년에 평균적으로 2개는 먹은 셈이에요. 매장 수는 2,700여 개로, 1,490여 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맥도날드보다 2배가량 많고요. 게다가 햄버거, 피자, 샌드위치 등 영국 내 모든 테이크아웃 브랜드 중에서 방문 점유율 8.2%를 차지하고 있어요. 10명 중 1명은 그렉스를 찾고 있다는 뜻이에요. 이 정도면 국민 음식의 국민 브랜드라 할 만하죠. 비결이 뭘까요?
그렉스는 소시지 롤에만 집중했어요. 보통의 경우, 소시지 롤을 사이드 메뉴로 파는 것과는 다른 행보죠. 메뉴가 단촐한 대신 중앙 공급 방식 등으로 운영 효율성을 높여 단가도 낮췄어요. 일반적인 소시지 롤이 3~4파운드인 반면 그렉스는 1파운드, 음료까지 해도 2파운드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죠.
입지 선정도 소시지 롤의 정체성에 맞는 장소를 택했어요. 학교 앞, 전철역, 마트 등 사람들이 바쁘게 이동하는 곳에 입점해서 고객이 빠르게 끼니를 해결할 때 찾는 곳으로 자리매김했죠. 하지만 그렉스를 싸고 가까이에 있어서 성공한 브랜드라고 보기엔 설명이 부족해요. 그렉스는 이미 일상적인 음식인 소시지 롤을 더욱 일상적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거든요.
예를 들어 볼게요. 소시지 롤은 아침이나 점심 식사로 주로 먹어요. 저녁에는 상대적으로 판매가 떨어질 수밖에요. 그래서 그렉스는 펍으로 가기로 했어요. 저녁에도 소시지 롤을 먹을 수 있도록 맥주 펍을 연 거예요. 뉴캐슬의 한 백화점에 ‘골든 플레이크 태번(The Golden Flake Tavern)’이라는 이름으로요. 펍을 통해 소시지 롤을 먹는 맥락을 하루 끝까지 늘렸죠.
또한 펍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어요. 인테리어 브랜드 ‘아이콘(Icon)’과 협업해 처음으로 홈웨어 컬렉션을 선보였거든요. 소시지 롤을 모티브로 한 대형 빈백과 쿠션 시리즈가 대표적이에요. 그렇다고 크기를 키우고 용도만 바꾼 게 아니에요. 빈백 안쪽엔 간식을 넣을 수 있는 작은 포켓을 만들어 실용성까지 함께 챙겼죠. F&B에서 라이프스타일로 영역을 확장한 셈이에요.
그뿐 아니라 크기를 줄여 일상의 틈새를 파고들기도 해요. ‘바이트사이즈 그렉스(Bitesize Greggs)’라는 새로운 포맷의 매장을 선보였거든요. 이름처럼 ‘한입 크기’의 매장이죠. 매장 크기도 작아요. 기차역이나 쇼핑몰처럼 유동 인구는 많지만 공간 제약이 큰 곳에 여는 걸 목표로 하니까요. 이 소형 매장은 출근 전, 점심 시간 등의 시간을 기차 기다리는 5분, 쇼핑 중의 짧은 휴식 등으로 더 쪼갠 거예요. 요즘 사람들의 바쁜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변화이기도 하죠.
이처럼 그렉스는 하루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하는 다양한 시도로 국민 음식의 국민 브랜드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그런데 끊임없는 변화로도 그렉스가 지금의 반열에 오른 걸 충분하게 설명하진 못해요. 그렉스가 서민의 음식을 파는 브랜드로서 진정성을 보여주면서 국민 브랜드로 자리잡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거든요. 때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사연은 이래요.
금융위기 여파로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자, 어디서든 돈을 긁어모으기로 했어요.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바로 테이크아웃 세금이었어요. 이를 이해하려면 영국의 특이한 세금 구조를 알아야 하는데요. 영국에서는 일반 식품은 부가세가 없지만 뜨거운 테이크아웃 음식에는 20%의 부가세가 붙었죠. 그래서 햄버거나 치킨처럼 ‘뜨겁게 먹으라고 파는 음식’에는 세금이 붙고, 빵이나 샌드위치처럼 그냥 진열해둔 음식은 세금이 없었어요.
그렉스의 소시지 롤도 이 규정 덕분에 부가세가 붙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부가 이걸 문제 삼기 시작했어요. “갓 구운 파이나 소시지 롤도 결국 뜨거운 음식 아니냐, 다 같은 기준으로 과세하자”는 거였죠. 이 소식이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었어요. 사람들은 정부의 새 정책안에 “Pasty* Gate”라고 이름 붙이며 전면으로 반대했죠.
*페이스트리(Pastry)에 속재료를 채워 넣고 구운 영국 음식
앞서 설명했듯 소시지 롤은 서민들의 심리적 마지노선 같은 음식이었어요. 그런 소시지 롤의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죠. 이때 그렉스는 적극적으로 이 전투에 참전했어요. 소시지 롤의 선봉대장으로서 정부의 정책에 전면으로 맞선 거죠.
어느 정도였냐면요. 매장에서 고객 서명운동을 벌이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건 서민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했죠. 자연스럽게 그렉스가 소비자 편에 서 있는 그림이 만들어졌어요. 가격 올리고 모른 척할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앞장서서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들의 고객들의 편에 섰던 거예요. 단기적으로 매출을 올리는 거보다는 영원한 서민들의 친구가 되는 쪽을 선택했죠.
결국 정부는 과세 방안을 철회했어요. ‘일부러 보온해서 뜨겁게 파는 음식’만 세금을 붙이는 쪽으로 정책을 수정했죠. 사실상 그렉스가 승리한 셈이에요. 이 사건 이후 그렉스의 이미지가 확 달라졌어요. 단순히 싼 가게가 아니라, 서민 편에 서서 정부 정책에 맞선 브랜드라는 인식이 생겨버린 거죠. 이렇게 광고 한 번 하지 않았는데 전국민이 이 이야기를 다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국민 브랜드’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어요.
결국 국민 음식의 국민 브랜드를 만든 건 전략이나 마케팅이 아니라 진정성이었어요. 이처럼 고객을 위하는 진심이 담겨 있으니, 국민들도 그렉스를 국민 브랜드로 추켜세울 수밖에요. 번쩍이는 아이디어만큼이나 브랜드의 영혼을 반짝이게 하는 게 중요한 이유예요. 설령 진부한 이야기처럼 보일지라도요. 그렉스가 증명했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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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있어요. 일반 식품은 부가세가 없지만 뜨거운 ""테이트아웃"" 음식에는 20%의 부가세가 붙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