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밖 기념품 숍? 관람의 끝이 아닌 계기가 되다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뉴욕 마스터예요.
‘간판’은 도시의 얼굴이자 나이테예요. 건물이 도시의 전체적인 구조를 구성한다면, 간판은 도시의 이미지와 인상을 결정하거든요. 결과적으로 간판은 ‘지역 정체성’과 연결되어요. 한자로 쓰인 네온사인 간판을 보면 홍콩이, 아줄레주 형식의 간판을 보면 포르투갈의 리스본이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죠.
더불어 간판은 개인의 감정과도 연결되는 요소예요. 간판은 특정 장소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 장소에 얽힌 향수를 자극하거든요. 예를 들어 어릴 적 부모님과 자주 갔던 레스토랑의 간판을 보면 어릴 적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죠. 간판은 지역의 정체성을 넘어 개인의 추억 저장소인 셈이에요. 즉, 개인이 애착을 가질 법한 대상이 되기도 하죠.
뉴욕 브루클린에는 이런 간판의 특수성에 착안한 박물관이 있어요. 뉴욕의 간판들을 모아 전시하는 박물관, ‘뉴욕 간판 박물관(New York Sign Museum)’이에요. 뉴욕 간판 박물관은 디자인 스튜디오인 ‘노블 사인스(Noble Signs)’가 운영하는 곳으로, 오랫 동안 모아 왔던 뉴욕의 간판들을 2024년부터 대중에게 공개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서린 레스토랑, 식료품점, 신발 가게 등의 간판이 이 곳에 모여있죠.
뉴욕 간판 박물관은 원래 사전 예약을 통해서, 정해진 시간에만 방문이 가능해요. 그런데 지난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 간 열렸던 ‘오픈 하우스 뉴욕’의 일부로 참여해 큰 관심을 받았어요. 오픈 하우스 뉴욕은 뉴욕 내 300개 이상의 명소를 선정해 둘러 보는 행사로, 여러 미디어에서 이번 오픈 하우스 뉴욕 기간 중 꼭 방문해야 할 장소로 뉴욕 간판 박물관을 손꼽기도 했어요.
뉴욕에는 뉴욕 간판 박물관처럼 흥미로운 테마의 박물관들이 많아요. 아이스크림, 성, 착시 현상, 몰입형 미디어 등 다채로운 테마의 박물관들이 있죠. 그런데 뉴욕에서 유명한 건 박물관 뿐만이 아니에요. 본진인 박물관 못지 않게 유명해진 박물관의 ‘기념품 숍’이 있는데요. 심지어 이 기념품 숍은 박물관 밖으로 나와 도쿄, 교토, 홍콩 등 해외 도시에 독립적인 편집숍으로 진출하기까지 했어요. 으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딸린 가게에 불과하던 기념품 숍이 어떻게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그 비결을 알아 보러 뉴욕으로 호핑해 볼까요?
미술관 밖 기념품 숍? 관람의 끝이 아닌 계기가 되다
어떤 미술관이든 관람 마지막에는 기념품 숍에 들러 쇼핑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순서예요. 마그넷, 엽서, 머그컵 등 전시의 여운을 간직한 굿즈를 구매하는 것으로 관람을 마무리하죠. 그런데 품질로 보나, 제품의 컨셉으로 보나 미술관을 관람하지 않았더라면, 구매할 만한 제품이 얼마나 될까요?
반면 ‘뉴욕 현대 미술관(MoMA, 이하 모마)’의 기념품 숍으로 시작한 ‘모마 디자인 스토어(MoMA Design Store)’는 독립적인 편집숍이자 브랜드로서 기능하고 있어요. 뉴욕만 해도 모마가 위치한 미드타운 뿐만 아니라 소호 지역에 별도의 매장이 있죠. 모마는 가본 적 없어도, 모마 디자인 스토어는 가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일부 사람들은 모마가 뉴욕 현대 미술관의 줄임말인지조차 모르고 모마라는 브랜드로 인식할 정도예요.
모마 디자인 숍이 미술관에서 독립할 수 있었던 데에는 큐레이션의 힘이 커요. 세계 최초로 건축과 디자인을 전담하는 큐레이션 부서를 설립했던 모마의 영향을 받았죠. 모마 디자인 스토어는 ‘디자인 필터’라 부르는 8단계 큐레이션 기준이 있는데요. 디자인이 얼마나 상징적인지, 모마 컬렉션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전시회에 등장했었는지, 기능, 소재, 직물, 기술의 관점에서 얼마나 혁신적인지 등이 이에 속해요.
모마 디자인 스토어의 큐레이터들은 전 세계의 디자인 무역 박람회를 다니며 신제품을 찾기도 하고, 모마의 과거 전시들을 연구해 역으로 신제품을 제안하기도 해요. 진행 중인 전시회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굿즈들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자체적인 큐레이션 기준을 세우고 제품을 연구하니 미술관을 벗어나서도 경쟁력을 가져요.
뿐만 아니라 레고, 뉴에라, 나이키 등 잘 알려진 브랜드와의 라이선싱 파트너십을 통해 제품을 개발하기도 하는데요. 모마의 컬렉션 중 하나인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테마로 한 레고 세트, 나이키와 협업해 발매한 양말 등이 대표적이에요. 모마의 리테일 비즈니스는 온라인 판매, 오프라인 매장, 그리고 라이선싱을 통해 매년 300만 건 이상의 거래가 이루어져요.
일반 소비자들에게 미술관보다는 편집숍이 문턱이 낮아요. 모마 디자인 숍의 존재감 덕분에 모마의 인지도도 덩달아 올라갔죠. 2023년 기준 모마의 방문객은 약 270만명으로, 이 중 최소 7%가 모마 디자인 스토어의 상품을 통해 모마를 알게 되었다고 해요. 전시 관람을 마무리하는 ‘출구’ 역할을 하던 기념품 숍이, 전시 관람으로 사람들을 끌어 들어는 ‘입구’ 역할을 하게 된 거예요.
이에 모마는 모마 디자인 숍을 모마의 홍보관으로 제대로 활용하기로 해요. 이런 의도는 2025년 5월부터 9월 말까지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재개관한 모마 디자인 스토어의 소호 지점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미술관이 연상되는 매장 레이아웃, 스토리텔링을 위한 공간 등을 통해 모마 디자인 스토어가 모마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죠.
보다 직접적으로 둘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기도 하는데요. 매장 문 근처에 설치한 스크린을 통해 모마에서 진행 중인 전시의 일부를 감상할 수 있어요. 덕분에 소호의 모마 디자인 숍에 들렀던 쇼핑객이 미드타운에 있는 모마로 발걸음을 돌릴 확률이 높아지죠. 과거에는 미술관이 기념품 숍의 제품에 당위성을 부여했었지만, 이제는 상호적인 관계로 진화한 거예요. 변화한 미술관과 기념품 숍의 관계는 기념품 숍은 물론, 미술관의 미래까지 밝게 만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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