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화장품을 사는 어른? ‘헤이세이 걸’의 등장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도쿄 마스터예요.
이번 여름 휴가 다녀오셨나요? 이미 다녀온 분들도 있을 거고, 여름의 끝자락에 다녀오실 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있는 일본도 8월이 대표적인 휴가 시즌이에요. 여행과 관련한 지출이 가장 많은 달이죠.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올해 8월에는 본격적인 여름 휴가 시즌에 접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전처럼 여행에 소비를 하지 않는다고 해요. 물가 상승과 폭염으로 인해 역대 8월 중 소비자 신뢰 지수가 최저치를 기록하며 여행 관련 소비가 위축된 거예요.
소비자들의 이런 변화를 읽어낸 건 ‘하쿠호도 생활 종합 연구소’예요. 하쿠호도 생활 종합 연구소는 도쿄의 광고회사, ‘하쿠호도’에서 운영하는 싱크탱크인데요.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을 예측하기 위해 소비자를 ‘생활자’로 정의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해요.
이 하쿠호도 생활 종합 연구소가 매월 발간하는 인사이트가 있어요. 월 단위로 생활자들의 소비 동향을 예측하는 ‘다음달 소비 예보’예요. 여기에는 물건을 사고 싶거나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는 욕구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한 집계치인 ‘소비 의욕 지수’라는 게 있는데요. 이번 8월, 소비 의욕 지수는 46.5점으로 전월 대비 -0.2점, 전년 8월 대비 -0.8점인 수치를 기록했죠.
수치가 하락한 원인을 더 자세히 볼까요? 소비 예보는 소비 의향을 16가지 항목으로 구분해 조사를 해요. 그중 여행, 패션, 외식 등 집 밖 소비 부문이 눈에 띄게 감소했어요. 이는 전체적인 소비 의욕 지수를 하락하게 만들었죠. 한편 전월 혹은 작년 대비 소비 의향이 증가한 항목도 있었어요. 여행이나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 도서 및 엔터테인먼트 관련 소비 의향은 상승했죠.
이처럼 도쿄는 지금 소비 심리가 한껏 위축된 여름을 보내고 있어요. 그럼에도 도쿄의 동향은 움직여요. 새로운 트렌드가 싹 트고, 더위에 지친 소비자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죠. 그렇다면 지금 도쿄의 풍경은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요?
📍트렌드: 장난감 화장품을 사는 어른? ‘헤이세이 걸’의 등장
📍브랜드: 야채가 자라는 컵라면? 라면 브랜드가 일상을 가꾸는 법
📍디자인: 일상의 한 컷으로 기억될 도쿄의 여름
[트렌드] 장난감 화장품을 사는 어른? ‘헤이세이 걸’의 등장
일본에는 일본만의 시간이 흘러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호를 사용하기 때문인데요. 천황의 즉위와 함께 새로운 연호를 사용하고, 한 해를 연호와 연도를 결합하여 표기해요. 예를 들어 2025년을 일본에서는 ‘레이와 7년’이라고 부르죠.
레이와 이전에는 ‘헤이세이’라는 연호가 쓰였는데요. 아키히토가 천황으로 재위했던 1989년 1월 8일부터 2019년 4월 30일까지가 헤이세이 시대였죠. 그런데 최근 이 ‘헤이세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소비층이 떠오르고 있어요. 이른바 ‘헤이세이 걸(平成女児)’. 그렇다면 헤이세이 걸은 어떤 소비층일까요?
헤이세이 걸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유년시절을 보낸 세대를 의미해요. MZ세대 일부가 속한 헤이세이 걸은 디지털 네이티브면서 동시에 과거의 레트로한 분위기에 노스탤지어를 느끼죠. 그래서 아날로그적인 키홀더, 문구 등에 애착을 가지는 특징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헤이세이 걸들이 경제력을 갖춘 세대로 성장하면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어요. 이들이 어렸을 때 유행했던 것들을 다시 즐기는 트렌드가 떠오른 거예요. 그렇다고 어릴 적 갖고 놀던 장난감을 소비하는 게 아니에요. 헤이세이 걸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동시에 어른을 타깃한 아이템들이 인기죠.
특히 헤이세이 걸들이 어렸을 때 좋아했던 만화 혹은 캐릭터를 소재로 한 화장품이 각광을 받고 있어요. 화장품 브랜드 ‘클레어보테(CreerBeaute)’에서 출시한 ‘다마고치’ 립스틱과 블러셔, <달의 요정 세일러 문> 테마의 파우더 등이 대표적이에요.
심지어 제품을 기획하는 것을 넘어, 아예 인기 애니메이션을 테마로 한 코스메틱 관련 브랜드가 생겨나기도 했어요. 만화 <프리티 큐어>를 기반으로 하는 화장품 브랜드 ‘오토나 프리티 홀릭(Otona pretty holic)’과 코스메틱 잡화 브랜드 ‘큐레트(Curette)’가 그 주인공이죠. 이 브랜드들은 반짝하는 유행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팬들과 함께 오래 가는 브랜드가 되고자 해요.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점이 한 가지 있어요. 이 화장품들 모두 완구 회사 ‘반다이’에서 만들었거든요. 1996년에 출시되었던 다마고치는 애초에 반다이와 위즈에서 만든 장난감이었고, 클레어보테 또한 반다이의 화장품 브랜드죠. <프리티 큐어>도 반다이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고요. 완구 회사가 기존 IP를 활용해 떠오르는 소비층을 타깃한 신규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한 거예요.
누구나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할 만큼 제조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시대예요. 그래서 IP의 힘이 더욱 막강해졌죠. 누군가의 향수를 자극하는 IP를 가지고 있다면, 이처럼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브랜드] 야채가 자라는 컵라면? 라면 브랜드가 일상을 가꾸는 법
일본의 ‘닛신(NISSIN)’은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과 컵라면을 개발한 회사예요. 1948년 회사를 설립해 1958년에 최초의 라면인 ‘치킨 라멘’을 출시했고, 1971년에는 최초의 컵라면인 ‘컵누들’을 발매했죠. 이를 바탕으로 수십 년간 시장을 이끌어 왔어요.
업력이 오래된 만큼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친숙해졌어요. 하지만 동시에 식상해지고 올드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죠. 그래서 닛신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일상과 함께 하고, 기억되고자 해요. 2024년 5월과 2025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발매한 한정판 ‘야채 재배 세트’를 통해서요.
이 ‘컵누들 야채 재배 세트’는 컵라면을 다 먹고 난 후, 빈 용기에 야채를 키울 수 있도록 구성한 제품인데요. 이 세트에는 여러 가지 맛 컵누들과 함께 바질, 파 등 각종 채소 씨앗, 그리고 흙이 포함되어 있어요. 파종부터 수확까지 야채에 따라 45~90일 정도가 걸리죠.
그런데 느닷없이 웬 야채 재배 세트일까요? 닛신은 야채가 자라는 동안, 컵누들 로고가 새겨진 용기가 고객의 일상에 함께 하는 걸 노렸어요. 매일 야채를 가꾸는 마음으로 컵누들 용기를 바라보는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컵누들에 대한 애착이 생기죠. 취식 후 버려지는 용기를 유대감을 형성하는 도구로 활용한 거예요. 또한 덤으로 야채를 재배할 수 있으니 컵누들을 구매할 확률도 높아질 테고요.
컵누들은 그 어떤 컵라면 브랜드보다 일본 사람들과 오랜 시간 함께해 왔어요. 일본인 중에서 컵누들을 모르는 사람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컵누들은 신규 고객을 발굴하고 유치하는 데에 힘쓰기보다 기존 고객들과의 유대 관계를 강화하는 걸 택한 거예요. 컵라면이라는 정체성은 지키면서, 긍정적이고 색다른 방식으로 일상에 함께 하면서요.
[디자인] 일상의 한 컷으로 기억될 도쿄의 여름
요즘 ‘제철 코어’라는 말이 유행이에요. Z세대를 중심으로 제철을 느끼거나 즐길 수 있는 경험을 하는 트렌드인데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을 먹는 것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이 제철 코어가 꼭 식생활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어요. 영역을 확장해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아이템을 일상에 들여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감성을 즐기는 것 또한 제철 코어를 더욱 풍성하게 하죠. 그렇다면 우리의 여름을 더욱 싱그럽게 만들, 도쿄에서 발견한 여름맛 라이프스타일 아이템들을 소개할게요.
1️⃣ 나뭇잎 온도계 (リーフ サーモメーター)
나뭇잎 하나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요. 봄에는 푸릇푸릇한 새순이, 여름에는 싱그러운 녹음이,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낙엽이 되니까요. 도쿄에는 이처럼 기온에 따라 변하는 나뭇잎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온도계가 있어요. 나뭇잎 모양의 이 온도계는 20~25도 사이일 때는 초록색을 띄고, 더 추워지면 갈색으로, 더 더워지면 노란색으로 바뀌어요. 정확한 온도는 측정하지 못해도, 실내에서 계절의 변화를 즐기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2️⃣ 바람개비 나팔꽃 자석 (カゼグルマ 朝顔)
나팔꽃은 여름에 피는 대표적인 꽃이에요. 활짝 핀 나팔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름을 느낄 수 있죠. 그렇다면 이 나팔꽃 모양을 한 바람개비 자석을 집에 들이는 건 어떨까요? 자석이 붙는 곳이라면 어디든 붙일 수 있고, 바람이 불면 나팔꽃이 팽그르르 돌아가 여름의 바람마저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어요.
3️⃣ 물결 오프너 (ワープ オープナー)
더운 여름, 시원한 음료수는 필수예요. 탄산 음료도 좋고, 맥주도 좋아요. 그런데 이때, 이 오프너와 함께라면 시원한 음료를 마시는 즐거움이 병을 여는 순간부터 시작돼요. 물결 모양의 이 오프너는 시각적으로 병따개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여름 무드를 물씬 풍기죠. 게다가 사용성도 개선했는데요. 손으로 그립을 쥐기 편안하게 디자인했을 뿐만 아니라, 주머니에 쏙 넣을 수 있는 크기라 캠핑, 피크닉 등 야외에서 사용하기에도 좋죠.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은 소품만으로도 일상에 여름이 가까이 들어온 듯해요. 이렇게 제철을 즐기다 보면 소소한 행복이 찾아오죠. 계절을 곁에 들이는 여유를 가져야 하는 이유예요. 그리고 이 작은 틈은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말랑하게 일깨워 줄 거예요. 여러분의 여름은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오늘의 도쿄 호핑 어떠셨나요? 뉴스레터가 재밌었다면 비슷한 관심사나 취향을 가진 지인들에게 공유해 주세요. 내일은 상하이로 떠날 예정이에요. 상하이 호핑도 함께해 주실 거죠?
공유하기: https://www.cityhoppers.co/p/6b0c2ba8-8490-4123-b011-f068b03fd99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