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시성비 다음은 ‘멘’성비! 트렌드가 된 ‘멘’의 정체는?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도쿄 마스터예요.
최근에 물건을 사거나 식당을 예약할 때, 지치는 기분을 느껴본 적 없나요?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편리해질 일상을 기대했지만, 쏟아지는 정보들은 역설적으로 결정을 더 어렵게 만들었어요. 이런 피로감을 먼저 읽어낸 일본에서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등장했다고 하는데요. 어떤 키워드일까요?
과거에는 지갑의 효용을 높여주는 ‘가성비’인 ‘코스파(Cost Performance)’를 따졌고, 다음에는 시간의 효율을 높이는 ‘시성비’인 ‘타이파(Time Performance)’를 신경 썼어요. 하지만 2026년에는, 돈이나 시간을 아끼는 것만으로는 삶의 만족도를 충분히 설명하기 부족해요.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돈도 시간도 아닌 나의 ‘정신 건강’. 그래서 마음의 스트레스를 낮추고, 심리적 평온을 유지하는 소비 태도인 ‘멘탈 퍼포먼스(Mental Performance)’, 줄여서 ‘멘파’가 떠오르고 있어요.
그렇다면 왜 멘파가 중요해졌을까요? 이 배경에는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AI의 역설이 있어요. AI 덕분에 좋은 선택지는 훨씬 많아졌지만, 그 방대한 정보 중에 진짜를 가려내고 최선을 골라야 하는 피로감이 일상이 되었거든요. 여기에 SNS를 보며 남들의 선택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작은 결정 하나에도 실패할까 봐 신경 쓰다 보니, 정신적인 에너지가 금방 바닥나기 쉽죠. 결정이라는 행위 자체가 엄청난 심리적 비용이 된 셈이에요.
이제 소비자들은 더 싼 것, 더 빠른 것을 넘어서 내 마음의 평화를 지켜줄 수 있는 서비스에 기꺼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어요. 이런 배경 속에서 멘파 소비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데요. 하나씩 살펴볼게요.
선택 부담을 0으로, 나보다 나를 잘 아는 큐레이션
쇼핑몰에서 검색하고 고르는 일조차 하나의 노동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요즘 똑똑한 서비스들은 굳이 질문하지 않아요. 대신 고객의 취향을 읽고, 정답에 가까운 기본값을 먼저 제안하죠. 소비자는 수많은 리스트를 직접 하나하나 볼 필요가 없어요. 대신에 AI가 채워둔 장바구니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덜어내는 거예요.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빼는 방식이니 의사 결정이 훨씬 가벼워지죠. 일상에서 가장 자주 고민하는 ‘먹는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보면 이 변화가 더 실감나게 다가와요.
(1) 이 반찬 필요하죠? 알아서 골라주는 ‘집밥’
우선 집밥 고민을 덜어준 ‘델리 오이식스(Deli Oisix)’. 맞벌이 부부들 사이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식재료 택배 서비스인데요. 이 서비스는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되는, 조리된 요리와 반찬 세트를 냉장 상태로 배송해 줘요. 하지만 진짜 인기 비결은, 조리의 편리함이 아니라 선택의 편리함에 있어요.
가입할 때 선호하는 상품과 배송 빈도를 등록해두면, 그 주기에 맞춰 추천 상품이 자동으로 장바구니에 담겨요. 매번 무엇을 살지 고민하며 하나씩 골라 담는 수고를 덜어주고, 이미 담긴 목록에서 뺄 것만 고르거나 배송을 건너뛰기만 하면 되니 선택의 부담감을 확 낮춰주죠.
메뉴 구성에서도 멘파적인 배려가 돋보이는데요. 보통 아이가 있는 집은 메뉴 하나를 고를 때도 ‘너무 맵진 않을까?’ 걱정하며 고민에 에너지를 쓰게 돼요. 델리 오이식스는 매운 요리라도 기본 베이스는 담백하게 구성하고 매운 양념은 따로 동봉해 이런 작은 고민의 시간까지 줄였어요. 선택지부터 선택 과정까지 에너지를 아껴준 덕분에, 출시 1년 만에 누적 300만 식 판매라는 기록을 세우며 멘파 소비의 아이콘이 되었죠.
(2) 식당 선택부터 예약까지 한큐에 해드려요
집 밖에서 한 끼를 해결할 때도 멘파적인 접근이 중요해졌어요. 사실 식당 하나 예약하는 일에도 꽤 많은 에너지가 드는데요. 메뉴를 훑고, 광고성 글을 피해 솔직한 리뷰를 확인하고, 여러 후보지를 비교하다 보면 피로감이 몰려오죠. 일본의 대표적인 맛집 플랫폼 구루나비(Gurunavi)가 선보인 AI 앱 ‘우마미!(UMAME!)’는 이 지점을 파고들었어요.
우마미의 사용법은 단순한데요.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는 대신, 친구에게 말하듯 “오늘 저녁에 조용히 대화하기 좋은 분위기 맛집 찾아 줘”라고 문장을 던지면 끝. 그러면 AI가 구루나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식당을 제안해 주죠. 이러한 편리함 덕분에, 출시 직후부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어요.
하지만 우마미가 꿈꾸는 진짜 멘파의 세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앞으로는 묻기도 전에 AI가 먼저 움직이는 ‘제로 클릭’ 서비스로 진화할 예정이거든요. 예를 들어, 고객의 달력을 파악해 중요한 기념일이 다가오면 취향에 맞는 레스토랑을 제안하고, 예약까지 마쳐주는 식이죠.
AI가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리면 선택의 즐거움이 사라질까 걱정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마미는 AI가 제안한 후보군 안에서 고객이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균형을 유지해요. 장소에 대한 막막한 고민은 AI에게 맡기고,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미식의 즐거움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요.
감정의 부담을 줄인, 예측 가능한 편안함
시간을 아끼는 단계를 넘어, 내 감정을 관리하는 일이 큰 숙제가 됐어요. 그러다 보니 새로운 경험이나 짜릿한 자극을 찾기보단, 예상하지 못한 감정의 동요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격리하고 싶은 욕구가 커졌죠. 이렇게 마음이 지친 일본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상태가 ‘나기(凪)’인데요. ‘나기’는 ‘바람이 멈추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바람이 잦아들고 파도가 멈춘 잔잔한 바다처럼, 마음이 크게 휘둘리지 않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거죠.
수많은 후기를 확인해 실패할 확률이 낮은 선택만 하고,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싫어하는 현상도 결국은 비슷한 맥락이에요. 나를 불편하게 할 변수를 미리 차단하고, 심리적인 보호막을 튼튼하게 세워두는 거죠. 이런 ‘나기’의 마음을 읽어낸 서비스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1) 사랑도 목소리부터 듣고 고를래요
인연을 맺는 방식에서도 이런 ‘저자극’ 트렌드가 나타나요. 외모와 스펙 위주의 매칭 앱에 지친 이들이 최근에는 새로운 앱에 빠졌는데요. 바로, ‘보이스텝(Voicetep)’. 조건이 아닌 목소리로 시작하는 관계예요. 기존 앱들이 키, 직업, 연봉 같은 데이터를 비교하게 했다면, 보이스텝은 그 과정을 과감히 생략했어요. 데이터만 보고 만났다가 실제 모습에 실망하게 되는 ‘실패 리스크’가 생각보다 크잖아요. 그래서 보이스텝은 세심한 단계를 거쳐요.
처음에는 얼굴 사진이나 텍스트 프로필 없이 오직 목소리만으로 첫 대화를 시작해요. 그렇게 마음이 맞으면 더 깊은 통화를 나누고, 그 다음 영상 전화로 상대방을 확인한 뒤, 마지막에 메시지로 데이트 약속을 잡는 방식이죠. 시간을 아끼는 ‘타이파’ 관점에서는 느리게 느껴질 수 있지만, 데이터에 빠지지 않고 상대방을 차분히 알아가는 과정 덕분에 심리적인 안정감은 훨씬 높아요. 결국 조건으로 사람을 고르는 선택의 부담에서 벗어나, 사람 자체에 집중하는 멘파적 가치가 통한 셈이죠.
(2) 장소도, 멤버도 실패 없이 프라이빗하게
이런 심리적 방어 기제는 머물고 싶은 공간의 정의도 바꾸고 있어요. 불특정한 다수가 모이는 화려한 핫플레이스 대신, 검증된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프라이빗한 대관형 공간이 새로운 프리미엄으로 떠오르고 있거든요. 미쓰이 부동산에서 운영하는 ‘하브하브(HUBHUB)’는 그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예요.
하브하브는 도심 속 버려진 공간을 활용해 사우나, 수영장, 바비큐장, 영화관 등을 한곳에 모은 매력적인 놀이터를 만들었어요. 흥미로운 점은 하브하브의 성공 비결이 ‘폐쇄성’에 있다는 거예요. 사업 초기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일반 시설로 운영했지만, 성과가 저조했거든요. 그런데 지인끼리만 통째로 빌려 쓰는 ‘전체 대관 시스템’으로 바꾸자 2030 세대의 회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어요.
모르는 사람의 시선이나 소음을 신경 쓸 필요 없는 ‘내 편만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게다가 이곳은 즐길 거리와 먹거리가 모두 준비되어 있어, 모임 호스트 입장에서도 선택 부담을 확 낮춰줬죠. 이처럼 나만의 아지트에서 누리는 ‘심리적 안전거리’가 가치 있는 소비의 기준이 되고 있어요.
멘파 사례에서 볼 수 있듯, 2026년에는 가격과 속도 경쟁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기에 부족해요. 거친 파도가 치는 일상을 보내고 온 사람들에게, 잔잔한 평온함인 ‘나기(凪)’와 같은 안식처를 내어줄 수 있어야 하죠. 앞으로 멘파라는 새로운 가치 위에 또 어떤 배려 깊은 서비스들이 우리를 위로해 줄까요? 평온한 마음으로 기다려 볼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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