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성비 전성시대? 지금은 시성비 피로 사회!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도쿄 마스터예요.
2025년 9월 1일, 일본 피자헛이 다소 파격적인 신메뉴를 출시했어요. 이름은 ‘핸디 멜츠 말차 시라타마 쿠로미츠’. 말차가 들어간 초록색 도우 위에 말차 페이스트, 일본식 찹쌀 경단인 시라타마 등을 토핑으로 올리고 일본 전통 시럽 쿠로미츠를 뿌린 달콤한 피자예요. 교토의 유서깊은 말차 브랜드, ‘기온 츠지리’와 협업해 선보인 피자헛 최초의 일본식 스위트 피자죠.
별안간 피자헛이 이런 피자를 출시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말차가 유행이라서일까요? 사실 말차는 거들 뿐, 지금 일본 F&B 업계는 ‘쓰키미(月見 )’ 맞이 준비가 한창이에요. 쓰키미는 음력 8월 15일, 가장 큰 달을 볼 수 있는 날 밤에 달맞이를 하는 일본의 문화예요. 이 때 보름달을 닮은 둥근 모양의 찹쌀 경단인 ‘쓰키미 당고’를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죠. 피자헛 또한 여기에 착안해 찹쌀 경단이 들어간 신메뉴를 기간 한정으로 출시한 거예요.
피자헛의 신메뉴를 보니, 문득 궁금해졌어요. 피자헛이 아닌 다른 F&B 브랜드들은 어떤 흥미로운 쓰키미 메뉴를 내놨을까요? 맥도날드, KFC 등과 같은 일본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브랜드들과 모스 버거, 스키야, 요시노야, 코메다 커피 등 내로라하는 일본 브랜드들의 쓰키미 메뉴를 찾아 봤죠. 그런데 웬걸, 경단은 어디 가고 모두 ‘계란’을 이용해 쓰키미 메뉴를 출시했어요. 특히 버거 메뉴가 많았는데, ‘쓰키미 버거’라는 카테고리가 있을 정도였어요.
실제로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쓰키미 시즌에 찹쌀 경단보다 계란이 들어간 쓰키미 버거를 먹는 게 더 익숙할 정도예요. 물론 계란의 노른자가 둥근 보름달과 닮아 있긴 해요. 하지만 이 사실만으로는 찹쌀 경단이 계란으로 대체된 이유를 설명하기에 부족하죠. 어쩌다 계란은 찹쌀 경단을 대체하게 된 걸까요?
계란 후라이가 들어가는 쓰키미 버거의 시초는 1991년, 맥도날드가 출시한 신메뉴였어요. 당시 맥도날드가 버거에 들어가는 재료에 대한 선호도 조사를 했는데, 달걀이 인기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마침 쓰키미 시즌인 가을에 계란 공급이 안정적이기도 했죠. 메뉴에 대한 수요도 있고, 원재료의 공급도 원활하니 가을 한정으로 계란을 넣은 버거를 출시한 거예요.
여기에 마케팅 아이디어를 발휘해 계란 노른자를 달에 비유하기로 했어요. 맥도날드의 쓰키미 버거가 뜨자, 이후 다른 외식 체인점들도 잇따라 계란이 들어간 쓰키미 메뉴를 개발했어요.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동참하자 쓰키미 시즌에 계란이 들어간 메뉴를 먹는 게 보편화되었고요.
쓰키미 버거는 일본 F&B 업계가 전통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비즈니스적인 실익까지 확보한 영리한 아이디어였어요. 오래된 문화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힘을 보여준 사례죠. 쓰키미 시즌을 맞이해 쓰키미 버거와 같은 아이디어를 배우러 도쿄로 호핑해 볼까요?
📍트렌드: 시성비 전성시대? 지금은 시성비 피로 사회!
📍브랜드: AI와 장인의 콜라보, ‘세대별 맥주’를 양조하다
📍디자인: 병원 유니폼에 ‘포켓몬’으로 멋을 부린 이유
[트렌드] 시성비 전성시대? 지금은 시성비 피로 사회!
이제는 ‘타이파(時性比)’라는 말에 익숙할 거예요. ‘타임 퍼포먼스(Time performance)’의 줄임말로, 우리나라 말로 하면 ‘시성비(時性比)’, 즉 투자하는 시간 대비 성능을 의미하는 말이죠. 일본에서 요리, 식사, 청소, 쇼핑 등 매일 반복되는 일상 생활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트렌드를 의미해요. 마케팅 툴 개발 회사인 ‘리프로(Repro)’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68명 중 57.3%가 평소 타이파를 의식하며 살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의외의 결과가 하나 나왔어요. “타이파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무려 70%가 “그렇다”고 응답한 거예요. 타이파를 의식하는 생활이 즐거운 일이거나 이상적인 일이 아니라 일종의 의무감에서 비롯된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최근 이런 마음을 반영하듯 ‘타이파 피로(タイパ疲れ)’라는 말까지 생겨났어요. 타이파를 강박적으로 실천하려고 하다가 생겨나는 피로감을 의미하는데요. 크게 3가지 증상으로 나타나요. 먼저 꼭 필요한 휴식조차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초조함과 불안감을 느껴요. 다음은 효율적인 선택을 계속 고민하다 보니 뇌가 끊임없이 자극을 받아 집중력의 저하와 주의 산만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는 아무리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했다고 해도 만족감 대신 공허함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이제 사람들이 타이파가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타이파를 실천하기 위한 게 아니라, 타이파 피로를 극복하기 위한 행동 패턴들이 주목받고 있어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하나는 굳이 ‘비효율’을 선택하는 체험을 하는 거예요. 산책, 음악 감상, 독서 등 목적이 없는 시간을 통해 뇌와 마음의 여백을 회복시키는 거죠. 두 번째는 디지털 디톡스. 일정 시간 동안 스마트폰 알림을 끄고 정보 유입을 제한해 뇌를 도파민과 자극으로부터 단절시켜요. 마지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긍정하는 마인드 셋 갖추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악’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오히려 이런 시간이 타이파 피로 회복에 필수적이라는 걸 인식해야 해요.
이제는 소비자들이 효율보다는 만족감을, 절약보다는 여유를 즐겨야 할 때임을 자각하고 있어요. 타이파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변화는 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브랜드] AI와 장인의 콜라보, ‘세대별 맥주’를 양조하다
AI는 정말 인간의 기술을 위협할까요? 이런 편견을 가볍게 뛰어 넘은 컬래버레이션이 있어요. 일본의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 ‘코에도 브루어리(COEDO brewery)’의 ‘인생 양조 크래프트(人生醸造 craft)’예요. 인생 양조 크래프트는 코에도 브루어리가 일본의 IT대기업 NEC와 합작해 만든 맥주 시리즈예요. 2020년 첫 출시를 시작으로, 맛과 색을 업그레이드하며 지금에 이르렀죠.
인생 양조 크래프트는 이름처럼 사람의 인생을 맥주로 표현한 시리즈예요. 20대부터 50대까지 각 세대가 가지는 특유의 가치관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풍미와 색감에 반영해 4가지 맥주로 양조했어요.
20대: 과일 향이 나고 쓴 맛이 덜한 과일 헤이지 세션 IPA
30대: 상쾌한 맛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세션 IPA
40대: 원숙한 효모와 바나나의 맛이 나는 헤페 바이젠
50대: 캐러멜, 베리 향이 어우러져 노련함과 열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벨지안 스트롱 다크 에일
이 시리즈의 양조 과정을 한 번 볼까요? 먼저 코에도 브루어리는 NEC의 에이전틱 AI에 각 세대를 대표하는 일본인의 프로필을 기반으로 맥주 레시피를 요청했어요. 에이전틱 AI는 현대 일본인의 세대적 특성을 분석해 페르소나를 만들고, 코에도 브루어리의 내부 레시피 데이터 및 전 세계 오픈 데이터와 결합해 새로운 레시피를 제안했죠. 이때 코에도 브루어리의 양조 장인들은 양조 방식, 색깔, 맛, 향, 재료 등에 대해 프롬프트를 수정하거나 에이전틱 AI와의 논의를 통해 완성도를 높였어요.
그렇게 AI가 생성한 가설과 숙련된 장인의 오랜 경험이 서로를 보완한 맥주가 칸생했어요. AI가 방대한 데이터로부터 새로운 관점과 가능성을 제시하고, 인간이 경험, 감성, 철학을 융합해 협조적 창조의 모델을 선보였죠. 결과적으로 익숙한 매개체인 맥주가 스스로의 인생을 되새기는 건 물론,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 즐거운 계기가 됐어요. 전통 문화와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 갈등이나 마찰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진 거예요.
이런 맥주를 기획한 코에도 브루어리는 그 시작부터 혁신의 DNA를 가지고 있어요. 모회사인 ‘교도쇼지(協同商事)’는 1970년대부터 일본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에서 유기농업을 실천해 오던 농업회사예요. 건강한 토양을 유지하기 위해 밀을 재배해 비료로 사용했었는데, 이 밀로 맥주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코에도 브루어리의 시작이었어요. 여기에 가와고에 특산품인 ‘고구마’를 활용한 맥주 ‘베니아카’로 전국적, 세계적 히트를 쳤죠.
1996년 출범한 코에도 브루어리는 일본 크래프트 맥주계의 선구자이자, 글로벌 무대에서 일본산 크래프트 맥주의 위상을 높인 장본인이에요. 브랜드 론칭 후 약 30년이 흐른 지금, 불모지였던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성숙 단계에 에르렀어요. 전통 있는 맥주 브루어리가 양조 기술에 AI를 도입한 건, 이미 성숙한 시장에서 또 한 번의 히트를 노리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디자인] 병원 유니폼에 ‘포켓몬’으로 멋을 부린 이유
병원에 가는 건 아이나 어른이나 두려운 일이에요. 아파서 가거나, 혹은 아픈 곳을 발견하러 가는 곳이니까요. 여기에 의사의 흰 가운, 간호사의 단색 의료복 등 의료인들의 진중한 패션은 환자들을 더 긴장하게 만들어요. 그렇다면 의료인들의 패션에 익숙한 요소를 더한다면 환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에 도쿄의 메디컬 어패럴 전문 브랜드, ‘클라시코(Classico)’가 나섰어요. 일본인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하고 알아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포켓몬’과 컬래버레이션을 한 거예요. 2025년 8월에는 4마리의 포켓몬이 수놓아져 있는 의사 가운을 출시했죠. 소매 끝에는 피카츄가, 왼쪽 앞주머니에는 꼬부기, 이상해씨, 파이리가 있어요. 흰색 가운에서 너무 튀지 않도록 알록달록한 캐릭터 대신 캐릭터들의 상징적인 실루엣을 회색 자수로 표현했어요.
사실 클라시코의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에요. 2022년 포켓몬과의 첫 협업을 시작으로 의료인들이 입는 스크럽복에 피카츄를 심어 놓았죠. 이번에 의사 가운을 론칭하면서 이브이와 잠만보 버전도 추가했어요. 어디 포켓몬 뿐인가요. 원피스, 스누피, 월리를 찾아라 등 다양한 만화 시리즈를 선보여 왔어요.
클라시코의 이런 사랑스러운 의료복 시리즈는 ‘스크럽 캔버스 클럽(Scrub canvas club)’ 프로젝트의 일환이에요. 이름처럼 의료인들이 매일 입는 스크럽복을 캔버스 삼아 의료 현장에 온기와 미소를 더하고자 히는 거예요. 만화뿐만 아니라 예술가, 사진작가, 영화, 심지어 동물원이나 연필 브랜드 등 분야를 넘나 드는 파트너들과 함께 딱딱한 의료 현장의 분위기를 바꿔 왔죠.
사실 이 스크럽 캔버스는 환자보다도 의료인들을 위한 프로젝트였어요. 의료복도 유희성이 있어야 의료 전문가들이 스크럽을 선택하고 착용하는 데 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스크럽이 단순히 유니폼 또는 기능성 작업복이 아니라 의료인들의 근무 환경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 주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본 거죠. 덕분에 의료진들뿐만 아니라, 병원에 오는 환자들까지 행복해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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