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점 약국미 있으시다, 약 대신 '시'를 처방하는 약국!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런던 마스터예요.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어려운 문제가 있어요. ‘마음’이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몸이 아프면 약을 처방 받으면 돼요. 상처는 연고로, 염증은 항생제로, 감기는 감기약으로 치료할 수 있죠. 그런데 마음이 다쳤을 때는 병원도, 약국도 소용없어요.
물론 우울증, 불안장애 등 병으로 판단되는 정도라면 병원에 가야해요. 하지만 우리가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니까요. 실연 등으로 인해 마음이 아플 수도 있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우울, 불안, 외로움 등에 빠지기도 해요. 이럴 때는 정말, 어디를 찾아 가면 될까요?
런던에는 이럴 때 찾을 법한 약국이 있어요. 옥스포드 스트리트에 위치한 ‘포에트리 파마씨(Poetry Pharmacy)’예요. 포에트리 파마씨는 이름처럼 약 대신 ‘시’를 처방하는 약국이에요. 증상에 따라 도움이 될 만한 시를 처방해 문학적 응급처치를 해주는 곳이죠.
포에트리 파마씨는 러쉬(LUSH) 매장 바로 윗층에 숍인숍 형태로 위치해 있어요. 매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빨간색 입간판이 눈에 띄죠. 여기에는 “당신의 감정적 병을 위한 대안적인 테라피(Alternative therapy for your emotional ailments)”라고 적혀 있죠. 그렇다면 서점 같은 약국, 약국 같은 서점을 표방하는 이 매장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먼저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 오는 책장이 하나 있어요. 보통의 서점이었다면 ‘소설’, ‘에세이’, ‘경영/경제’ 등으로 구분되어 있을 섹션이 ‘응급 처치(First aid)’, 평온(Calm)’, ‘변화(Becoming)’, ‘안정(Comfort)’ 등으로 분류되어 있어요. 필요한 기분을 기준으로 각 증상에 맞는 시집이 큐레이션 되어 있죠. 이 카테고리는 포에트리 파마씨가 출간한 시집 시리즈의 제목이 되기도 했어요.
책장 옆에는 마치 약국처럼 알약이 들어 있는 약병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어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약병에 적혀 있는 약 이름들이 재밌어요. 책장을 구분하는 카테고리보다 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감정들이 적혀 있거든요. ‘자신감 증진(Boost of confidence)’, ‘상심(Broken heart)’, ‘지금을 즐겨라(Carpe diem)’, ‘진정(Chill)’, ‘용기(Courage)’, ‘희망(Hope)’, ‘영감(Inspiration)’ 등 병 종류만 수십 가지에 이르죠. 약병에는 알약 모양의 캡슐이 여러 개 들어있고요. 그리고 캡슐 안에는 선택한 마음의 상태에 맞는 시 구절이 적힌 종이가 있죠. 약처럼 처방받은 캡슐에서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거예요.
포에트리 파마씨는 시집과 알약을 세트로 묶어 기프트 박스를 구성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평온’ 기프트 박스에는 마음의 평화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시들을 큐레이션한 시집과 ‘마음챙김(Mindfulness)’ 약병이 포함되어 있어요. 여기에다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평온’이라는 이름의 다크 초콜릿까지 더했으니 금상첨화예요.
포에트리 파마씨에서는 시를 읽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을 치유하는 종합적인 경험이 가능해요. 시를 비롯해 마음 치유에 도움이 되는 초콜릿, 배쓰밤 등을 함께 구매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시집이나 약병 구매 시, 점원이 직접 ‘처방전’까지 손글씨로 써 주거든요. 진짜 처방전처럼 환자 이름, 처방약, 복용 방법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치료제를 처방받는 듯한 기분이 들죠. 마지막 결제의 순간까지 손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거예요.
한편, 시로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 음료와 디저트가 빠질 수 없어요. 맛있는 커피 한 잔과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은 어떤 마음이든 달래주는 힘이 있으니까요. 포에트리 파마씨 매장 한 켠에는 커피, 케이크 등을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카페 공간이 있는데요. 이 공간의 이름은 ‘조제실(Dispensary)’이에요. 카페가 아니라 조제실에서 처방해 주는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니 손님은 미각으로도 마음을 치유 받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포에트리 파마씨는 어쩌다, 왜 이런 매장을 기획하게 된 걸까요? 포에트리 파마씨의 공동 창업자 데보라 알마(Deborah Alma)는 원래 시인, 시집 편집자, 교육자로 활동했어요. 수십 년간 치매 환자나 호스피스 환자, 학생 등을 대상으로 시를 활용한 교육 활동을 해왔죠. 그녀는 오래 전부터 이미 시의 힘을 몸소 깨닫고 있었어요.
“시가 가진 무언가는 다른 어떤 예술도 따라올 수 없는 것 같아요. 마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아주 직접적으로, 아주 친밀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어떤 것의 핵심으로 아주 빠르게 다가가죠.”
데보라 알마, 포에트리 파마씨 공동 창업자, <Positive News>와의 인터뷰 중
2011년, 데보라는 시를 활용한 처방의 활동 반경을 넓히기로 해요. 1950년대 구급차 한 대를 중고로 구입해 ‘응급 시인(Emergency poet)’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누비며 사람들에게 시를 처방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녀는 축제, 병원, 도서관, 학교 등을 방문하여 시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시를 알약 형태로 나눠주었어요. 사람들에게 독서 습관, 좋아하는 장소, 휴식을 취하는 방법 등에 대해 묻고 체계적인 처방해줬죠.
이후 그녀는 영국 슈롭셔 비숍스 캐슬에 세계 최초의 시 전문 약국, 포에트리 파마씨의 1호점을 열었어요. 런던 매장과 마찬가지로 시집, 시 알약, 문구류 등을 큐레이션해 판매하는 매장이었어요. 2021년에 포에트리 파마씨가 ‘독립 기업상(Independent Business Award)’ 후보에 올랐는데 이 때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러쉬와 인연이 닿아 팝업을 했던 게 지금의 런던 매장의 시작이었죠.
포에트리 파마씨는 지금 3호점 오픈을 앞두고 있어요. 2026년 3월, 영국 요크 매장이 문을 열 예정이거든요. 포에트리 파마씨의 활동 반경은 전국구예요. 영국의 서부인 비숍스 캐슬에서 시작해 남동부인 런던, 북부에 위치한 요크로 확장했으니까요. 덕분에 더 많은 영국인들이 시를 통해 감정을 치유 받고, 약국도, 병원도 치료하지 못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이런 형태의 서점, 혹은 약국이야말로 마음의 병이 늘어난 요즘 시대에 필요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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