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는 지금 ‘논리적으로’ 쇼핑하는 중?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도쿄 마스터예요.
요즘 한국에 여행 온 일본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기념품이 하나 있어요. 바로 ‘쌀’인데요. 사실 쌀의 품질이나 맛으로만 따지자면 일본은 강대국 중 강대국이에요. 그런데 일본인들이 별안간 왜 한국까지 와서 쌀을 사가기 시작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해요. 지금 일본은 ‘레이와 쌀 소동’이 현재 진행형이거든요. 2024년 5월부터 시작된 이례적인 쌀 품귀 현상으로, 그 결과 일본 내 쌀값이 폭등했어요. 2025년 1월 기준, 쌀값은 전년 동월 대비 무려 78%나 치솟았죠. 일본인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쌀값을 아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레이와 쌀 소동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어요. 원인 규명은 아직 오리 무중이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가 발벗고 나섰어요. 2025년 3월, 임시방편으로라도 비축미를 방출하기로 결정한 거예요. 재난이나 재해가 닥친 긴급상황이 아닌데도, 비축미를 방출하는 것이 이번이 최초라고 해요.
일본의 대기업들은 발빠르게 정부가 방출한 비축미를 저렴한 가격에 매입, 가격을 낮춘 신상품을 만들었어요. 그중 편의점 로손이 출시한 비축미 오니기리 2종은 특히 인기가 좋아요. 심플하게 소금으로 맛을 낸 ‘시오니기리’와 다시(出汁) 국물의 감칠맛이 특징인 ‘다시니기리’는 한정 수량으로 출시되었는데요. 둘 다 가격은 세금 포함 108엔(약 1,080원)으로, 149엔(약 1,490원)이었던 기존 소금 주먹밥 가격 대비 약 30% 저렴해요.
비축미 오니기리 2종은 매대에 올리기가 무섭게 품절되는 중이에요. 이 인기에는 저렴한 가격 외에도 비결이 하나 더 있죠. 비축미 오니기리를 맛보는 일을 ‘호기심’을 자극하는 특별한 ‘경험’으로 포지셔닝한 덕분이에요. 로손은 이 비축미 오니기리를 판매할 때 ‘빈티지(Vintage)’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요. 마치 고급 술인 와인 업계에서 와인에 사용된 포도가 수확된 해를 빈티지라 부르는 것처럼요.
2021년산 비축미로 만든 오니기리의 패키지에는 ‘Vintage 2021’라는 문구가 자랑스럽게 기재되어 있어요. 사실 우리나라처럼 일본에서도 묵은 쌀을 먹는 일은 매우 드물어요. 그런데 이를 ‘빈티지’라고 표기함으로써 ‘2021년산 쌀은 어떤 맛일까?’라는 호기심과 구매 욕구를 자극하죠. 저렴하기 때문에 사먹기 보다는, 궁금해서 사먹는 오니기리가 된 셈이에요.
비축미 오니기리는 후기도 칭찬 일색이에요. 기존 소금 오니기리 대비 전혀 부족하지 않다며 출시되는 한 계속 사먹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죠. 이런 호평에 힘입어 로손은 비축미와는 별도로 시장에서 2023년 쌀을 매입해 ‘빈티지 2023’ 오니기리를 추가로 출시했어요. 수량이 많지 않아 도쿄 내 250개 점포에서만 판매되었죠.
위기를 기회로. 진부한 이 표현이 참신한 현실이 되는 도시가 바로 도쿄가 아닐까요? 지금 도쿄에서는 또 어떤 참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트렌드: 도쿄는 지금 ‘논리적으로’ 쇼핑하는 중?
📍브랜드: 1시간에 1팀만 받는 수상한 슈퍼의 정체
📍디자인: ‘모양’만으로 상표권 획득,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
[트렌드] 도쿄는 지금 ‘논리적으로’ 쇼핑하는 중?
일본의 소비자 물가 지수(Consumer Price Index, 이하 CPI)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에요. 가장 최근인 2025년 7월 CPI 예상치는 3.3%로, 일본중앙은행의 목표였던 2%를 크게 상회하고 있죠. 일본의 물가 상승은 최근 3년 간 지속되어 왔어요. 물가가 상승할수록 소비자들은 똑똑해지는 동시에 새로운 소비 트렌드도 생겨나요.
지속되는 고물가 속, 지금 도쿄 사람들은 ‘로지컬 쇼핑(Logical shopping)’ 중이에요. 충동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쇼핑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성능과 가격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제품들을 사는 거예요. 고물가로 인해 쇼핑에서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죠.
최근 로지컬 쇼핑의 양상을 살펴볼게요. 기본적으로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가성비가 좋은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도 로지컬 쇼핑의 한 갈래로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뿐만 아니라, 가격이 높아도 가치를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 상품이라면 잘 팔리는 게 로지컬 쇼핑의 또 하나의 축이에요. 성분, 성능 등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고, 이를 패키지 디자인 등으로 전달해 설득력을 갖춘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죠.
그도 그럴 것이 로지컬 쇼핑의 핵심은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사는 게 아니라, 쇼핑의 성공 확률을 높이고자 하는 트렌드예요. 가격만큼의 성능을 증명할 수 있다면 기꺼이 지갑이 열리는 거죠. 그런데 쇼핑에서 실패하고 싶지 않은 심리 자체는 트렌드라기보다 당연한 것이기도 해요. 그럼에도 최근 로지컬 쇼핑 트렌드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사람의 심리가 작용하는데요. 인간은 어떤 과제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인 ‘자기효능감’을 가지고 있어요. 매번 자기효능감을 느낄 틈 없이 기계적인 의사결정이 반복되면 무력해져요. 그런데 정보의 양이 방대하고 제품의 기능이 상향평준화 되어 있는 요즘, 쇼핑에서 개인의 능력이나 개성이 반영될 여지가 적어요. 세상의 정보가 알려주는대로 구매하면 그만이니까요.
반면 로지컬 쇼핑에서는 소비자가 신기술이나 성분을 이해하고 높게 평가해, 고가의 상품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상황이 발생해요. 로지컬 쇼핑은 구매라는 행위에 자발적 판단과 개성이 작용할 틈새를 줘요. 결과적으로 로지컬 쇼핑에는 필요한 제품을 구매하는 것 외에도 자기효능감을 느끼는 효용이 있는 거죠. 쇼핑에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욕구와 자기효능감을 충족하고 싶다는 욕구가 만나 로지컬 쇼핑 트렌드를 만들어낸 거예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에서 시작한 트렌드이기에, 어쩌면 도쿄가 아닌 서울에서도 가능한 트렌드가 아닐까요?
[브랜드] 1시간에 1팀만 받는 수상한 슈퍼의 정체
2025년 5월, 교토의 오래된 목조 주택에 수상한 슈퍼가 문을 열었어요. 판매하는 제품의 가짓수는 50가지, 쇼핑은 한 번에 미리 예약한 1팀만 가능, 그나마도 1시간으로 시간 제한이 있어요. 심지어 고객이 내점했을 때 바로 쇼핑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점원이 차 한 잔을 대접하며 정성 들여 상담까지 하죠.
최대한 다양한 제품을 한 데 모으고, 최대한 많이 모객해서, 최대한 체류 시간을 늘리려고 하는 요즘 마트들과는 완전히 상반된 행보예요. 이 가게는 왜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일까요?
이 수상한 가게의 이름은 ‘초신쇼 기노쿠니야 교마치야(調進所 紀ノ國屋京町家)’.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서 ‘고급 마트’하면 단연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노쿠니야(Kinokuniya)에서 운영하는 컨셉 숍이에요. 기노쿠니야는 가격대는 다소 높지만, 엄선한 수입 제품, 유기농 및 친환경 식료품들을 만날 수 있는 마트예요. 본사가 있는 도쿄를 포함해 대도시의 부촌을 중심으로 매장을 운영 중이죠.
고급 식재료로 유명한 마트다보니, 샌드위치, 빵, 과자, 잼 등 마트의 PB 제품들까지 인기가 좋아요. PB의 인기를 필두로 꾸준히 점포 수를 확장하고 있죠. 지역이나 상권에 따라 서브 브랜드인 ‘데일리 테이블 기노쿠니야’, ‘기노쿠니야 앙트레’ 등의 소형 매장들을 오픈하며 1~2인 가구 중심의 젊은 세대에게도 어필하고 있고요.
이렇게 호조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기노쿠니야는 한 가지 딜레마에 부딪혔어요. 고급 슈퍼의 대명사인 기노쿠니야는 원래 제품 큐레이션과 정중한 접객이 강점인 브랜드예요. 1910년 도쿄 아오야마의 맞춤형 고급 과일 가게로 시작한 만큼, 세심한 접객이 브랜드의 근간이자 경쟁력이죠. 그런데 점점 매장이 많아지고 규모가 성장하면서 상품의 가치를 고객에게 전하기가 점점 어려워졌어요.
이에 기노쿠니야는 브랜드의 원점으로 돌아가 고객과의 접점을 마련하고자 초신쇼 기노쿠니야 교마치야를 오픈한 거예요. 교마치야는 1950년 이전에 지어진 교토의 목조 주택들을 일컫는 말이에요. 도쿄가 아닌 교토를, 신식 건물이 아닌 교마치야를 선택한 것 또한, 오랜 세월을 간직한 장소에서 초심을 되새기기 위함이죠.
요즘의 마트는 셀프 키오스크, AI 제품 추천 등 점점 무인화되어 가고 있어요. 반면 초신쇼 기노쿠니야 교마치야는 무인화와는 반대의 대척점에 위치해 있죠.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브랜드의 역사에는 순행하는 행보가 아닐까요?
[디자인] ‘모양’만으로 상표권 획득,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
초콜릿을 얇게 코팅한 막대 과자의 원조, ‘포키(Pocky)’가 드디어 ‘3D 상표권’을 획득했어요. 3D 상표권이란 상품의 3차원 형태 자체를 상표로 등록하여 보호 받는 것을 의미해요. 로고나 텍스트 없이 제품의 외형만으로 해당 브랜드를 식별할 수 있다고 인정 받아야 하죠.
포키는 일본의 제과 대기업 에자키 글리코가 1966년에 처음 출시한 제품이에요. 가늘고 긴 막대 과자에 초콜릿을 코팅하되, 손가락에 초콜릿을 묻히지 않고도 과자를 집을 수 있도록 아랫 부분은 초콜릿 코팅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에요.
사실 그간 에자키 글리코는 카피캣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어요. 그럼에도 상표권 획득이 어려워 포키의 고유한 디자인을 지키는 데에 애를 먹었죠. 해외 시장에서는 카피캣인 외국 브랜드에 소송을 걸었다가 패소하기도 했어요.
3D 상표를 얻으려면 제품의 외관이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그 모양만으로 제품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고유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해요. 포키라는 이름 없이 긴 막대 스틱에 초콜릿을 일부 입힌 형태만으로 포키라는 브랜드를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죠.
현재 일본에는 약 3천 개의 3D 상표가 등록되어 있는데, 실제로 제과업계에서 획득한 사례는 거의 없어요. 코카콜라의 윤곽이 있는 병,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 실루엣 등 독특한 패키지나 캐릭터 디자인에 적용되는 게 대부분이에요. 제과업계 사례는 8건으로, 그중에서도 3D 형태가 오랫동안 널리 사용되어 브랜드 식별이 가능하다는 것을 근거로 등록된 것은 단 2건에 불과해요. 메이지의 죽순 모양 초코 과자 '타케노코노사토’와 버섯 모양 초코 과자 ‘키노코노야마’ 뿐이죠.
이에 에자키 글리코는 3년에 걸친 연구와 준비를 바탕으로 포키의 형상을 입체 상표로 등록하는 데에 성공했어요. 대중의 인지도를 증명하기 위해 응답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고요. 16세~79세 사이, 1,036명의 응답자 중 91.6%가 포키의 모양만으로도 포키를 식별하는 것으로 나타났죠. 뿐만 아니라 내부 데이터 베이스에도 모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증거를 수집해 포키의 모양이 인식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냈어요.
물론 이번 상표권 등록은 일본 특허청이 허가한 것이기에 여전히 해외 시장에서는 효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적어도 카피캣들이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막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본국에서 3D 상표를 인정받고, 법적인 보호막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포키에게는 큰 힘이 될 거예요.
오늘의 도쿄 호핑 어떠셨나요? 뉴스레터가 재밌었다면 아래에 있는 좋아요나 공유도 해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