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먹고, 마신다? 도시를 미술관으로 만든 도쿄의 보법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도쿄 마스터예요.
요즘 일본의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메리하리소비(メリハリ消費)’가 보편화되고 있어요. ‘메리하리’란 어떤 일에 대한 강약을 의미하는 말로, 메리하리 소비는 어떤 분야에서는 지출을 아끼지 않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극단적으로 아끼는 소비 행태를 의미해요. 시장조사 기관 ‘민텔(Mintel)’이 발표한 최신 보고서, <프리미엄 vs. 가치 - 일본 2025>에 따르면, 일본 소비자들이 일상적인 생활비는 극도로 줄이는 동시에 특별한, 비일상적 경험에는 과감하게 지출을 하죠.
민텔이 2024년 9월에 실시한 글로벌 소비자 설문 조사에 따르면 당시 전 세계 소비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생활비’였어요. 식료품 가격, 에너지 가격 등이 급격하게 상승하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비보다는 저축이나 투자를 우선시했죠. 그렇다고 럭셔리나 기호를 위한 지출이 크게 줄지는 않았어요. 그 결과 2025년, 럭셔리 섹터와 여행 업계는 호조세를 띄고 있죠. 허리띠를 졸라 매는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위한 보상이 주는 만족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소비자 심리가 반영된 결과예요.
이런 트렌드는 특히 20~30대 여성 소비자가 견인하고 있는데요. 이번 보고서에서 20대 여성은 여행 및 휴가, 엔터테인먼트 및 여가와 같은 경험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할 의향이 있는 반면 식비 지출을 줄이고 싶어하는 것으로 드러났어요. 30대 여성 소비자들도 경험에 대한 지출 의향은 비슷하지만 집밥, 건강이나 운동에 소비하는 지출을 줄이고 싶어하는 비율이 높아요. 특별한 경험에 할애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상적인 생활비를 줄이는 추세죠.
이런 메리하리소비의 가장 큰 동기는 ‘기분과 감정 개선’이에요. 기분 전환을 위해 큰 소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로 여행 및 휴가, 오락 및 여가에 돈을 쓰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한편 뷰티 및 퍼스널 케어 제품, 의류 및 액세서리, 외식 등에 대한 지출을 늘리려는 사람의 비율은 낮았죠. 물질적 소유보다는 경험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럼 식료품, 생활용품 등 일상과 맞닿아 있는 브랜드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오히려 이런 소비자 추세를 반영해 일상적인 쇼핑에 게이미피케이션 요소 등을 더해 차별화할 수 있어요. 즐거움과 휴식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경험으로 삶에 흥미를 불어 넣는 거죠. 그렇다면 지금 도쿄에서는 어떤 재미가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있을까요? 소비자 엔터테인먼트의 현장인 도쿄로 호핑해 봐요!
예술을 먹고, 마신다?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 된 도쿄의 보법
2025년 11월 5일부터 9일까지 5일간 도쿄의 일상에는 비일상이 침투했어요. 올해로 5번째 행사인 ‘아트 위크 도쿄(Art Week Tokyo, 이하 AWT)’가 열렸거든요. AWT는 매년 도쿄의 현대 미술을 선보이는 행사로, 도쿄 전역에 위치한 50개 이상의 미술관, 갤러리 등이 참여해요.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행사에 참여하는 미술 기관들을 호핑하며 현대 미술의 최전선을 감상할 수 있어요.
AWT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전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그 중 ‘AWT 포커스’가 핵심이에요. AWT 포커스에서는 매해 다른 게스트 큐레이터가 특별 전시를 꾸미는데요. 그 밖에 비디오 아트 작품들을 선보이는 ‘AWT 비디오’, 큐레이터, 비평가, 작가 등이 모여 토론하고 강연하는 ‘AWT 토크’ 등이 AWT의 주축을 이루죠. 일부 전시는 하우스 투어, 아티스트 유닛의 퍼포먼스 등 상설 전시가 아니라 실시간 참여가 필요한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어 있어 현장감을 더하고요.
그런데 AWT에서 다채로운 전시 프로그램만큼이나 주목을 받는 코너가 또 있어요. 바로 ‘AWT 바’예요. 보통 이런 전시 행사에서 식음료 공간은 관람객들의 중간 정거장이 되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인 경우가 많아요. 특별한 경험보다는 휴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하지만 AWT 바의 경우, AWT의 주요 구성 요소 중 하나로 다감각적인 예술 경험을 제공하며 그 자체로 목적지가 되었어요. 그렇다면 AWT 바는 무엇이 특별한 걸까요?
AWT 바는 건축, 음식, 칵테일 등 3가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운영돼요. 신진 건축가가 바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부터 시작해, 신진 셰프가 새로운 먹거리를 개발하며, AWT에 출전한 아티스트들이 예술적 메시지를 반영한 칵테일을 선보이죠. 여기에 사운드 및 퍼포먼스 행사가 더해져 미식 경험을 극대화하고요. 회화, 조각, 영상 등 전형적인 예술의 틀을 깨고 F&B의 영역까지 예술로 끌어 들여 관람객들의 경험을 확장한 거예요.
올해 AWT 바는 총 3가지 칵테일을 준비했어요. 하나는 ‘오자와 츠요시’와 콜라보해 개발한 ‘판게아’ 칵테일로, 6개 대륙의 기원으로 알려진 판게아 대륙에서 영감을 받은 칵테일이에요. 또 하나는 ‘스마파! 그룹의 침↑폼’의 우주 쓰레기에서 영감을 받은 ‘골드 익스피리언스’, 마지막 하나는 ‘미와 야나기’의 대표작인 ‘엘리베이터 걸’에서 영감을 받은 동명의 칵테일이에요. 엘리베이터 걸 칵테일은 에메랄드빛 소다에 떠 있는 크랜베리 맛 젤리를 띄워 표현했죠.
음식은 도쿄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레페르베센스(L’Effervescence)의 총괄 셰프이자, 롯폰기의 브리콜라주 브레드 앤 코(Bricolage bread & co.)의 프로듀서인 ‘나마에 시노부’가 맡았어요. 2가지 핑거푸드를 선보였는데, 하나는 일본의 해초 문화와 프랑스의 샌드위치인 잠봉뵈르를 결합한 ‘해초 잠봉뵈르’였어요. 핑거 푸드가 이질적인 문화와 시간성이 교차하는 플랫폼이 된 거죠. 한편 어원은 금융(Finance)에서, 형태는 금괴에서 따온 디저트인 피낭시에(Financier)에 금박을 뿌려 구워냈어요. 예술이 물질성과 상징성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예요.
AWT 바는 식용 예술 작품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이에 걸맞게 공간 또한 하나의 예술품이기도 한데요. 올해 AWT 바의 공간은 ‘이치오 마츠자와’라는 도쿄의 젊은 건축가가 맡았어요. 투명도가 높으면서 불규칙한 모양으로 구부러진 아크릴 유리판을 사용해, 마치 실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빛을 받을 때에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특징이에요. 고정된 형태 없이 빛, 공기, 풍경, 그리고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탄생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결과죠. 매 순간 새로운 공간들이 끊임없이 생겨나 방문객들마다 각기 다른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런데 AWT 바는 왜 F&B로 영역을 넓히고, 단 몇 일간의 행사를 위해 메뉴 구성은 물론, 공간 디자인부터 새로 기획한 걸까요? 예술과 F&B 간의 결합은 관람객들의 시각적 경험을 미각적, 후각적 경험으로 확장시키기 때문이에요. 덕분에 관람객들의 몰입감이 더 높아지죠. 뿐만 아니라 예술보다 비교적 심리적 장벽이 낮은 식음료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예술의 세계로 초대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고요.
이러한 시도는 예술업계에서 최근 몇 년 간 떠오른 트렌드이기도 해요. 다양한 미술관, 갤러리 등에서 전시와 연계된 식음료 메뉴를 선보이며 예술 감상 방식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이어져 왔죠. AWT 바는 이러한 트렌드의 선두에 서서 예술품의 파생 작품으로서 식음료를 제안하고 있어요. 덕분에 도쿄의 아트 씬은 조금씩 더 넓어지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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