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차가 담배로 둔갑했다? 말차의 이유있는 변장술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뉴욕 마스터예요.
이제 뉴욕에서 말차는 트렌드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은 듯 해요. 말차 붐은 기네스 펠트로, 카일리 제너, 두아 리파 등 미국 Z세대 사이에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유명인들이 말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이후 ‘12 맛차’, ‘차차 맛차’ 등 유명 말차 카페들이 뉴욕에 안착하며 뉴요커들 사이에서 커피만큼 일상적으로 마시는 음료가 되었죠.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한때 ‘미국 Z세대 스타벅스’를 꿈꾸던 ‘블랭크 스트리트 커피’가 말차 음료 매출이 커피 음료 매출을 넘어서자 사명에서 ‘커피’를 떼고 ‘블랭크 스트리트’로 리브랜딩한 거예요. 각종 미디어에서는 뉴욕에서 펼쳐진 화려한 말차 붐을 조명했고요.
그런데 정작, 진짜 말차 시장은 붕괴되고 있다고 해요. 말차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호황인데, 시장이 붕괴되고 있다니 무슨 말일까요?
먼저 말차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저품질 말차나 위조 말차가 성행했어요. 수세기 동안 명성을 쌓아 온 일본 말차 회사들의 복제품이 늘어났죠. 이름을 베끼는 것도 모자라, 품질이 낮은 가루 녹차를 섞어 유통해 고품질 말차 회사들의 브랜드를 훼손시키고 있어서 위조업체들을 상대로 법적 분쟁까지 하는 중이죠.
실정이 이렇다면, 기존 말차 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말차는 농산물이라, 공산품과 달리 갑자기 생산량을 늘리기가 어려워요. 게다가 연중 봄의 첫 수확 때 빻은 말차만이 말차 음료에 쓰일 만한 품질인데, 두 번째와 세 번째 수확기에 나오는 말차만큼 생산량이 많지 않아요. 두 번째 수확기 이후부터는 말차가 쓰고 떫은 맛이 나 음료에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요리 등급’으로 유통되고 있어요. 일부 저가의 음료 브랜드들이 이 요리 등급의 말차를 사용하기도 하죠.
심지어 일부 고급 말차는 다양한 곳에 쓰이면서 물량 부족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어요. 고급 말차에 과일이나 꿀 등을 섞어 새로운 음료를 만들기도 하니까요. 업계 전문가들은 이건 마치 고급 부르고뉴 와인으로 상그리아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해요. 단순히 좋은 말차를 낭비하는 것 이상으로 문화적 관점에서도 문제가 되는데요. 생산량이 한정적인 고급 말차가 부족해지면, 정작 고품질의 말차가 필수인 일본 전통 다도 문화를 즐기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게 업계의 우려예요.
그런데 이런 말차 춘추전국시대 속, 뉴욕에는 일본 말차 업계도 반길만한 정도를 걸어 가는 브랜드가 있어요. 동시에 크리에이티브한 접근법으로 뉴요커들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죠. 이 말차 브랜드의 보법을 배우러 말차코어의 진원지인 뉴욕으로 호핑해 볼까요?
말차가 담배로 둔갑했다? 말차의 이유있는 변장술
흰색 상자에 미니멀한 그래픽, 작은 일러스트, 그리고 검정색 타이포그래피까지 언뜻 보면 담배처럼 보여요. 하지만 이 제품, 담배라고 하기에는 뭔가 달라요. 보통 담배 패키지에 쓰여 있는 ‘흡연은 해롭습니다(Smoking Kills)’라는 문구 대신 ‘음용은 치유합니다(Drinking Heals)’라는 문구가 쓰여있죠. 자세히 보니 이 제품은 담배가 아니라 마시는 ‘차’예요. 차 종류도 여러 가지로 말차뿐만 아니라 호지차, 홍차, 녹차, 카부세차 등 다양하죠.
이 차들은 뉴욕 베이스의 일본식 말차 및 베이커리 브랜드 ‘UnD’의 ‘드링킹 힐스(Drinking Heals)’ 프로젝트의 일부예요. 담뱃갑처럼 보이는 패키지에 담배에 적혀 있는 경고문을 비틀어 차의 유익함을 넌지시 알리는 거예요. 담뱃갑 패키지는 해로운 담배와 유익한 차를 대조시켜 강렬한 인상을 남기거든요. 여기에 사람들이 고품질의 차를 담배처럼 쉽게 가지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효과는 덤이고요.
그런데 담뱃갑을 닮은 디자인은 단순히 눈에 띄기 위한 목적이나, 휴대성과 편의성을 개선하기 위한 게 아니에요. 이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잇푸쿠(一服)’라는 일본 전통 문화가 있어요. 잇푸쿠란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는 의식이에요. 이때 보통 차를 한 잔 마시거나,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경우가 많죠. 이번 프로젝트의 디자인을 맡은 로웍스(LOWORKS)는 잇푸쿠 속 담배와 차의 대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잇푸쿠에서 두 가지 요소 모두 짧은 휴식의 매개체지만, 건강 관점에서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니까요.
게다가 제품 디자인을 구현하는 방식에서도 잇푸쿠 문화를 이어가요. 잇푸쿠는 일본의 전통 목판화인 ‘우키요에’를 통해 시각적으로 보존되어 왔어요. 그래서 이 컬렉션의 패키지를 인쇄할 때에 현대 판화 기법인 실크스크린 인쇄를 선택했죠.
신제품의 컨셉을 마케팅의 관점이 아닌, 문화적 배경에서 찾은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UnD는 단순히 일본 차를 판매하는 브랜드가 아니거든요. 예술과 디자인을 통해 현대적인 방식으로 일본 문화를 소개하고자 하죠. 사람들이 드링킹 힐스 프로젝트를 통해 차 한 잔과 함께 하는 잇푸쿠의 정신을 경험하고, 자신을 가꾸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깔려 있는 거예요.
실제로 UnD는 드링킹 힐스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평소에 말차를 판매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일본의 말차 산업을 존중하는데요. 취급하는 모든 말차를 일본의 생산자로부터 직접 공급 받아 유통하는 것은 기본, ‘프리미엄’, ‘스탠다드’, ‘베이직’ 3가지 라인의 말차를 선보여요.
프리미엄은 다도에 적합한 고급 말차인 반면, 스탠다드는 말차 라떼와 같이 말차 베이스의 음료를 만드는 데에 적합해요. 베이직은 빵이나 쿠키 등에 들어가는 요리용 말차고요. 이렇게 가격도, 품질도 다른 3가지 카테고리의 말차를 나누어 취급함으로써 말차가 오용되거나 남용되는 일 없이, 각 품질에 맞는 용도대로 쓰일 수 있도록 장려해요. 말차 시장에 불어온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기존 말차 시장의 현실과 시스템을 존중하는 거예요.
말차를 담뱃갑으로 둔갑시킨 새로운 시도는 말차 붐의 근원지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수 있을까요? 이 프로젝트 하나로 혹은 말차를 용도에 따라 나누어 파는 것만으로 말차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지 몰라요. 하지만 UnD처럼 말차 문화를 지키면서 동시에 말차의 일상화를 위해 힘쓰는 브랜드가 있기에 이 혼란한 격동기도 성장통처럼 지나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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