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값이 금값인 시대, 감자로 ‘김’ 맛을 내는 연금술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도쿄 마스터예요.
요즘 도쿄 사람들의 식사 풍경이 변하고 있어요. 전반적으로 쉽고, 효율적인 식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죠. 이런 흐름과 관련해 일본의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하는 ‘하쿠호도 생활 종합 연구소(이하 생활연구소)’는 몇 가지 유의미한 변화들을 포착했어요.
첫 번째로는 요리보다 반조리를 선호하는 경향이에요. 생활연구소의 장기 시계열 조사에 따르면, 1998년 이후 레토르트 식품, 냉동식품 등 이미 조리된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사람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어요. 2020년 이후에는 이 비율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의 비율을 넘어섰죠.
전세가 역전된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시기였어요.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격리 조치로 인해 집에서 식사하는 빈도가 증가했고, 요리에 대한 부담이 더 늘어났죠. 매장 운영이 어려워진 외식업계나 유통업계는 테이크아웃, 도시락 등에 주력하기 시작했고요. 소비자들은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고도 식사를 맛있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여기에 업계가 응답한 거예요. 수요와 공급이 만나 요리하지 않는 트렌드가 가속화되었죠.
또 하나의 변화는 함께 하는 식사보다 혼자 먹는 식사에 대한 선호도가 더 올라갔어요. 반면 외식보다 집에서 식사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람들의 비율은 감소했어요. 집에서 외롭게 한 끼를 때우는 개념이 아니라, 밖에서 자신이 먹고 싶은 메뉴를 온전히 집중해서 즐기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예요.
생활연구소가 발표한 ‘혼자 마그마’ 보고서에 따르면,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1993년에는 43.5%였지만, 30년 후인 2023년에는 56.3%로 증가했어요. 반면 ‘혼자 식사하는 것이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의 비율은 1993년 64.1%에서 2023년 34.9%로 감소했죠. 이는 2015년~2016년에 일본에 진출했던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영향을 끼쳤어요. 무선 이어폰까지 보편화되면서 혼자 있는 시간, 혼밥하는 시간을 더 즐겁고 풍요롭게 만들어줬죠.
마지막으로는 식사의 ‘프리스타일화’도 눈에 띄는 변화예요. 아침에 먹을 법한 빵, 요구르트, 과일 등이 중심이 된 메뉴를 점심이나 저녁으로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건강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혼자서 간단하게 먹고자 하는 욕망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해요. 한편 아침식사는 편의성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단백질이 들어간 음료나 빠르게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자로 대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아침식사의 간식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죠.
과거에는 빵을 저녁으로 먹는다든가, 하루 중 가장 든든히 먹어야 하는 아침을 음료로 대체한다든가 하는 건 거의 없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외식의 확대, 혼밥에 대한 선호도 증가, 타이파(タイパ) 트렌드 등으로 인해 식사 간 차이가 모호해지고 있어요. 먹기 쉽고, 준비하기 쉽고,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추세죠.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곧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들이 생겨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 기회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감지하고 그 안의 인사이트를 읽는 힘이 있어야 하고요. 오늘도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러 도쿄로 호핑해 볼까요?
김값이 금값인 시대, 감자로 ‘김’ 맛을 내는 연금술
요즘은 김값이 금값이에요. 지구온난화로 인해 수온이 상승하면서 김 생산량이 줄어들었거든요. 여기에 K-푸드 열풍이 불면서 전 세계적으로 김 수요까지 급증했어요.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어나니 가격이 상승할 수 밖에요.
그런데 한국의 김 값이 오르기 전, 비슷한 현상에 몸살을 앓던 나라가 있었어요. 바로 한국만큼 김을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본이에요. 일본도 김 생산량이 줄어 일본산 김 값이 폭등하자, 우리나라에서 김을 수입하기 시작했어요. 일본의 김 가격 상승 현상이 한국으로 번지기 시작한 거죠.
일본에서 김 가격 상승에 다들 당황하던 당시,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떠올린 회사가 있었어요. 다름 아닌 도쿄의 과자 회사, ‘칼비(Calbee)’예요. 칼비는 ‘포테이토칩’, ‘쟈가리코’, ‘쟈가비’ 등 감자로 만든 과자로 유명한 회사인데요. 감자 과자로 유명한 칼비는 어쩌다, 그리고 어떻게 김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요?
시작점에는 연이은 김 가격 상승에 괴로워하던 칼비의 신입사원, 쿠도 린페이가 있었어요. 학생 때부터 혼자 살던 그는 자취생의 필수품인 김 가격이 자꾸만 올라 애를 먹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신제품 개발자로서 ‘김 대체재’를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고기, 우유 등은 개인적인 신념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이미 대체품이 나와 있었으니, 김도 대체재를 개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원래부터 틈새시장이나 기회에 관심이 많던 그의 성향도 한몫했고요.
업계에 없던 제품이다 보니 원료부터 가공법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개발해야 했어요. 이때 쿠도가 주목한 건 감자칩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감자 전분’이었어요. 칼비 그룹은 일본 감자 생산량의 약 19%를 사용할 정도로 많은 양의 감자 과자를 생산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부산물인 감자 전분도 많이 생겨요. 그런데 점성이 높고 쫄깃한 식감을 내는 감자 전분의 특성상, 활용도가 낮았어요. 대부분의 감자 전분이 동물의 사료로 쓰이고 있었죠.
쿠도는 알맞는 원료를 발견하기 위해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미활용 자원인 감자 전분으로 실험을 했는데, 잠재력이 보였죠. 무엇보다 김보다 저렴한 가격의 대체재를 만들어야 했기에, 미활용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했어요. 감자 전분만으로는 김의 질감과 식감을 재현하기 어려워 김에 대한 논문과 전문 서적을 읽으면서 어떤 재료를 배합하면 김과 비슷한 맛, 향, 질감을 낼 수 있을지 고민했죠.
약 2년 간 2천 개 이상의 시제품을 거쳐 2025년 11월, 감자 전분과 곤약 가루를 활용한 김 대체품 ‘노리얀(のりやん)’을 출시했어요. 세계 최초의 일이었죠. 맛은 ‘다시 간장맛’과 ‘와사비 소금맛’ 2가지로 출시해 감자칩에 자주 사용되던 맛을 김으로 재해석했고요. 노리얀은 칼비 플러스 도쿄역점에서 준비된 수량이 소진되면 판매가 중단될 예정이에요. 하지만 미래에 본격적으로 상용화된다면 사회적으로는 김 가격을 안정화시키고, 사업적으로는 미활용 자원을 활용한 추가 매출을 기대할 수 있어요. 일석이조, 아니 일석다조의 제품인 셈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입사한지 몇 년 안 된 젊은 사원의 아이디어가 상품화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도 수년 간 수천 번의 테스트를 거치면서요. 사실 칼비는 2023년부터 사내 벤처를 육성하는 ‘이노베이션 & 비욘드 페스타’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조성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이죠. 노리얀도 이 프로그램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해 회사의 지원을 받아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할 수 있었던 거예요.
혁신과 도전은 칼비의 DNA에 새겨져 있어요. 칼비가 미활용 자원을 활용해 과자를 만든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거든요. 칼비의 개국 공신인 ‘갓파 에비센’도 버려지던 새우 껍질까지 통째로 사용해 만든 새우과자였어요. ‘포테이토칩’도 이전에는 주로 감자 전분으로만 가공되던 감자를 과자로 만든 사례예요.
하지만 이번에 출시한 노리얀이 더욱 큰 의미를 가지는데요. 감자 전분을 활용해 감자 과자가 아닌 아예 다른 카테고리인 김의 대체재를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지금에야 당연해진 대체품들, 예를 들어 비싼 버터의 대체품인 마가린, 게살의 대체품인 게맛살과 같은 제품을 개척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또 하나의 저렴하고 맛있는 대체 식품이 탄생한 거죠. 직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그 잠재력을 믿고 육성한 회사 덕분에 오늘도 일본의 식품업계는 한 발짝 더 발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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