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휴게소에선 '우동'향 입욕제를 판다?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도쿄 마스터예요.
일본에는 이른바 ‘우동현’이라 불리는 현이 있어요. 사누키 우동이 특산품인 가가와현이에요. 이 가가와현에 위치한 휴게소, ‘겐페이노사토무레(源平の里むれ)’에서 기발한 제품을 출시했어요. ‘사누키 우동 향탕(さぬきうどんの香湯)’이라는 이름의 입욕제예요. 사누키 우동 향탕을 목욕물에 넣으면 우동 국물 색과 향이 나죠. 심지어 따뜻한 우동인 가케 우동과 냉우동인 붓카케 우동, 2가지 맛으로 출시되어 종류를 고를 수도 있어요.
아무리 우동에 진심인 지역이라지만, 어쩌다 우동 국물 향 입욕제를 만들게 된 걸까요? 그리고 소비자들은 왜 이 제품을 사는 걸까요? 이 향탕을 푼 물에 몸을 담그면 스스로가 ‘우동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한 때 사누키 우동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을 위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위트를 더했죠. 체험형 소비가 인기를 끌면서, 가가와현 특산품인 우동을 음식의 관점이 아니라 ‘경험’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거예요.
제품 기획자는 겐페이노사토무레에 근무하는 ‘쿠보 요헤이’. 그는 이 향탕을 기획할 당시, 완전히 지쳐있었어요. 그래서 ‘사람이 우동이 된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죠. 사람이 우동이 되려면 그릇이 필요했고, 여기에서 욕조를 떠올린 거예요. 이 우연한 발상은 우동 국물처럼 생긴 온천수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2024년 12월에 처음 출시된 이 향탕은 발매와 동시에 품절 행렬을 이어갔어요. 덕분에 올해 7월, 여름 버전으로 재출시되었죠. 여름에 인기가 좋은 냉우동의 일종인 ‘히야카케 우동’과 ‘쇼유 우동’ 향탕을 개발한 거예요. 전자에는 민트 향을, 후자에는 레몬 향을 첨가해 온천 후의 청량감까지 고려했죠. 이어 일본에서 ‘좋은 목욕의 날(いい風呂の日)’이라고 불리는 11월 26일에는 세 번째 시리즈를 공개할 예정이고요.
위트 넘치는 우동맛 향탕을 개발한 쿠보 요헤이는 가가와현 출신이에요. 대학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가 졸업 후 도쿄 등 대도시에서 커리어를 쌓아갔죠. 이때의 경험은 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히트작을 선보이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해요. 도시인의 눈높이에서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거든요.
이처럼 더 넓은 세상에서의 경험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돼요. 그렇다면 요즘 도쿄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우리도 한 뼘 더 성장하기 위해서 도쿄를 호핑해 볼게요!
📍트렌드: 100엔짜리 투명 지갑은 어쩌다 Z세대 대세가 됐나?
📍브랜드: 중고 명품숍 비즈니스는 ‘호기심 제조업’?
📍디자인: 맥주 애호가들을 위한 과음 방지 맥주잔?
[트렌드] 100엔짜리 투명 지갑은 어쩌다 Z세대 대세가 됐나?
요즘 일본에서는 ‘100엔 투명 지갑’이 유행이에요. 100엔숍에서 파는 작은 파우치를 지갑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100엔 지갑 커뮤니티’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죠. 실제로 ‘크로스 마케팅’, ‘시부야 109 랩’ 등의 조사 결과에서도 점점 더 많은 Z세대들이 100엔 파우치를 지갑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어요. 별안간 1천원짜리 파우치를 지갑으로 사용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니, 이유가 무엇일까요?
먼저 캐시리스(Cashless)의 보편화를 들 수 있어요. 일본은 여전히 지폐나 동전과 같은 현금을 많이 사용하는 나라 중 하나인데요. 그런 일본에도 신용카드, IC카드, QR코드 결제 등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이 더 작은 지갑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겨났어요. 최소한의 현금만 가지고 다니다 보니 돈과 함께 립밤 같은 작은 물건도 넣을 수 있는 파우치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거예요.
여기에 Z세대가 용도를 구분해서 지갑을 사용하는 트렌드도 영향을 끼쳤어요. 가벼운 일상에서는 100엔숍에서 구매한 투명 비닐 파우치를, 외출 시에는 브랜드 지갑을 사용하는 거예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비싼 지갑의 분실 위험을 낮추거나, 콘서트나 행사장에 갈 때는 짐을 줄이기 위해서, 혹은 틱톡에서 유행해서 따라한다는 답변이 잇따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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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100엔숍 캔두는 2025년 5월 기준, 투명 파우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50% 증가했다고 발표했어요. 캔두는 꽤 오래 전부터 투명 파우치를 만들어 왔는데요. 원래는 사무용품과 같은 소품을 보관하는 수납 기능에 중점을 뒀었어요. 하지만 최근 Z세대의 수요를 바탕으로 인기 캐릭터와 협업을 하거나, 카라비너를 부착해 휴대성을 높이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파우치 중에서도 왜 비닐 소재로 만든 투명한 파우치가 특히 인기인 걸까요? 여기에는 내용물이 보여 사용하기 편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오시카츠 문화’도 크게 작용해요. 오시카츠는 쉽게 말해 아이돌, 캐릭터, 봉제인형 등에 대한 팬덤 활동을 의미해요. 이런 오시카츠 커뮤니티에서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투명 비닐 파우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요. 팬심을 드러내는 오시카츠의 본질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거죠.
시부야 109 랩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 일본 Z세대의 무려 80%가 오시카츠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응원하고 싶은 대상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는 뜻이에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은 앞으로도 계속될 테니, 투명 지갑의 인기는 지속되지 않을까요?
[브랜드] 중고 명품숍의 사업 영역은 ‘호기심 제조업’?
일본이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분야가 있어요. 바로 ‘중고 명품’이에요. 높은 수준의 명품 감정 기술, 꼼꼼한 상품 관리 등을 바탕으로 두터운 신뢰도를 얻고 있죠. 그만큼 중고 명품 매장들도 발달되어 있는데요.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 중 하나가 ‘고메효(KOMEHYO)’예요. 고메효는 일본 최대의 중고 명품 리테일 브랜드로, 독보적인 상품 상태와 명품 매장 버금가는 분위기로 유명해요.
하지만 고메효의 성공에는 이런 눈에 보이는 요소들만 작용한 게 아니에요. 사업 영역에 대한 재정의와 중고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힘써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먼저 고메효는 스스로의 사업 영역을 ‘호기심 제조업(Curiosity Manufacturing)’이라고 정의해요. 고메효의 사업 영역을 일반적인 비즈니스 언어로 표현한다면 중고품 매입 및 판매예요. 제품 제조는 하지 않죠. 그런데 고객의 호기심을 제조한다니, 무슨 말일까요?
모든 중고 명품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치를 지녀요. 어떤 제품도 똑같지 않을 뿐더러 고메효가 제품의 유지 보수와 수리를 통해 가치를 높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렇게 재탄생한 중고 명품은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해요. 고메효는 고객의 마음 속에 호기심을 싹 틔우고, 제품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일에 기쁨과 열정을 느끼는 브랜드인 거예요.
한편 고메효에게는 한 가지 과제가 더 있었어요. 바로 중고 명품 소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었죠. 지금이야 중고 명품 소비가 많이 보편화되었지만, 과거에는 중고품에 대한 편견이 있었어요. 실제로 고메효가 2005년, 신주쿠에 800평 규모의 매장을 열었을 때 하루에 방문객이 10명도 채 되지 않는 날도 있었죠. 심지어 신품 매장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중고품 매장이라는 것을 알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그렇다면 고메효는 중고 명품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꿔 왔을까요? 고메효는 ‘재사용(Reuse)’ 대신 ‘릴레이 유즈(Relay Use)’라는 개념을 선보였어요. 릴레이 유즈란, ‘물건은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전승되고, 유효하게 활용되어야만 그 사명을 다한다’는 의미예요. 릴레이 유즈는 단순히 중고품을 사고 파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녀요. 제품이 사람 사이로 이어지고,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니까요.
고메효의 릴레이 유즈 문화는 미래 세대의 가치관과도 상통해요. 고메효의 조사에 따르면, 가성비를 이유로 중고 명품을 선택하는 기성 세대와 달리, Z세대의 경우 ‘자기 표현’, ‘남들과는 다른 제품’, ‘친환경 소비’ 등을 이유로 중고 명품을 선택하고 있었어요. 젊은 세대에게 중고 명품은 절약 수단이 아니라 가치관을 반영하는 선택지 중 하나인 거예요. 미래 세대가 공감할 만한 방향으로 브랜드의 정체성과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기에, 고메효는 앞으로도 더 많은 고객들의 호기심을 제조하고, 릴레이 유즈의 가치를 전파할 수 있지 않을까요?
[디자인] 맥주 애호가들을 위한 과음 방지 맥주잔?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에서 맥주잔을 만들었어요. 여기까지는 놀라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맥주를 더 많이 마시도록 혹은 마시기 쉽도록 도와주는 맥주잔이 아니라 ‘마시기 어렵게’ 디자인된 맥주잔이에요. 이 맥주잔의 이름은 ‘천천히 맥주잔’. 맥주잔을 ‘모래 시계’ 모양으로 디자인해 아래 부분에 있는 맥주가 천천히 나오도록 설계됐어요. 가운데를 극단적으로 좁게 만들어 맥주의 흐름을 물리적으로 방해한 거죠.
심지어 이 맥주잔이 인기가 매우 좋아요. 2024년 7월, 10개를 한정판으로 처음 출시했을 당시 약 3천 건에 이르는 주문이 폭주했어요.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반응에 11월부터 일반 판매를 시작했고, 2025년 3월부터는 매달 100~400개 정도씩 선주문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이마저도 주문이 밀려 있어 2025년 8월 초 기준, 아직 900명이 넘는 고객들이 제품을 받지 못했죠. 그렇다면 이 수상한 맥주잔은 누가 만들었고, 왜 이렇게 인기인 걸까요?
이 맥주잔을 기획한 장본인은 ‘요나 요나 에일’로 유명한 ‘요호 브루잉’이에요. 요호 브루잉 팀은 맥주 애호가들이지만, 건강을 위해서도 건전한 음주 문화를 위해서도 과음은 금물이라는 데에 공감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술을 적당히 마신다는 게 의지만으로 쉽게 되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기획한 제품이 바로 이 천천히 맥주잔이었던 거예요.
여기에 더해, 천천히 맥주잔은 맥주를 ‘맛있게’ 하는 효과도 있어요. 요호 브루잉 에일은 풍미가 좋은데요. 천천히 맥주잔은 윗 부분이 와인잔 모양으로 되어 있어 맥주 향을 느끼기에도 최적이죠. 또한 맥주는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 상태보다 시간이 흘러 살짝 온도가 올라가야 풍미가 더 깨어나요. 맥주를 시간을 들여 마시는 일이 ‘답답함을 참는’ 게 아니라, ‘음미하는’ 경험으로 이어지는 셈이에요.
요호 브루잉은 천천히 맥주잔을 통해 맥주 애호가라면 공감할 만한 문제 의식을 파고 들었어요.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맥주를 빠르게 많이 마시는 것보다 천천히 마시는 게 더 즐겁다는 감각을 구현해 큰 인기를 끌었죠. 그런데 이 천천히 맥주잔은 일회성 아이디어 상품 혹은 마케팅 기획이 아니에요. 요호 브루잉의 사명과도 연결되어 있죠.
요호 브루잉은 맥주를 핵심 아이템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는 회사’라고 스스로를 정의해요. 단순히 맥주를 제조하고 많이 파는 것을 넘어, 맥주를 더욱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단기적인 매출이 아니라,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지표인 ‘고객 생애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러니 이렇게 재치 있으면서도 역설적인 맥주잔을 선보일 수 있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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