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사치, 럭셔리 치킨이 뜰 수 밖에 없는 이유
안녕하세요, 시티호퍼스 뉴욕 마스터예요.
오늘은 뉴욕 마스터로서 마음이 다소 무거운 날이에요. 2001년, 평화롭던 뉴욕의 일상을 앗아간 9·11 테러의 24주기이기 때문인데요.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테러가 지나간 자리에는 애도와 추모의 마음이 남았어요. 그리고 그 마음들이 모여 ‘9/11 추모관 & 박물관(9/11 Memorial and Museum)’이 세워졌죠.
뉴욕 시는 상시 운영 중인 9/11 추모관 & 박물관뿐만 아니라 보다 뉴욕다운 방법으로 이번 24주기를 추모하고 있어요. 테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동시에 슬픔에 잠기는 대신, 남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는 방향으로요. 그리고 이런 행사들은 뉴욕이 가진 불굴의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는 기회를 마련하죠.
그중 하나는 뉴욕 시간으로 9월 11일 밤부터 새벽까지 열리는 ‘빛 속의 찬사(Tribute in Light)’예요. 빛 속의 찬사는 공공 설치 미술로, 트윈 타워 모양의 푸른 빛줄기가 상공으로 뿜어져 올라와요. 뉴욕 시민들은 과거 트윈 타워가 있던 자리인 9/11 추모관 & 박물관 광장에서 이 빛줄기를 감상할 수 있어요. 워낙 규모가 크고 선명해 약 100km 거리에서도 보인다고 하니, 뉴욕의 웬만한 광장이나 공원에서는 구경이 가능하죠.
한편 수동적인 감상을 넘어 적극적인 참여로 추모하는 프로젝트도 있어요. 뉴욕을 노란빛으로 물들이는 뉴욕 최대 규모의 자원 봉사 프로젝트, ‘수선화 프로젝트’예요. 9월 한달 간, 매 주말마다 사전 등록을 마친 봉사자들은 뉴욕 각 지역을 돌며 노란색 수선화 구근을 심어요. 이듬해 봄이면 수선화가 땅을 뚫고 나와 뉴욕을 더 아름답게 만들테죠. 20년이 넘게 지속된 이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1천만 송이가 넘는 수선화를 싹 틔웠어요.
이 밖에도 5km 마라톤 ‘9/11 영웅 런(9/11 Heroes run)’, 무용수들의 공연 예술인 ‘침묵의 테이블 프로젝트 9/11(Table of Silence Project 9/11)’ 등 상징적인 행사들로 희생자들을 추모해요. 뉴욕은 이런 행사들을 통해 단순히 슬픔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지역 사회에 용기를 북돋고, 굳건한 뉴욕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있어요.
추모의 방식에서도 도시의 크리에이티브가 엿보이는 뉴욕. 덕분에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힘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가 비즈니스 씬에서도 뉴욕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죠. 이번 주 뉴욕의 트렌드, 브랜드, 디자인 분야에서는 어떤 소식들이 있는지, 함께 호핑해 볼까요?
📍트렌드: 소박한 사치, 럭셔리 치킨이 뜰 수 밖에 없는 이유
📍브랜드: 숙박을 뺀 스테이, 외국인 여행객이 줄어도 웃는다
📍디자인: 맥시멀리즘과 미니멀리즘 사이, 가벼운 핸드폰의 등장
[트렌드] 소박한 사치, 럭셔리 치킨이 뜰 수 밖에 없는 이유
글로벌 식음료 정보 회사, ‘데이터에센셜(Dataessential)’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레스토랑에서 통닭을 찾는 빈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해요. 지난 4년 간 57%, 지난 12개월 동안에는 34%가 증가했죠. 우리나라에서도 그렇듯, 보통의 경우 닭고기 요리는 돼지고기, 소고기 등으로 만든 요리에 비해 가격대가 낮은데요. 그렇다면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로 인해 저렴한 메뉴에 대한 선호가 올라간 것일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특히 뉴욕에서는 닭고기가 지금 진화 중이거든요. 뉴욕에서 닭고기는 이제 더 이상 저렴해서 먹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급스러워서 또는 문화적 경험을 위해 선택하는 선택지가 되고 있거든요. 대표적인 사례와 그 이유를 살펴 볼까요?
한국식 치킨으로 뉴요커들을 줄 세운 치킨 레스토랑 ‘코코닥(COQODAQ)’을 빼놓을 수 없어요. 코코닥은 치킨 너겟에 캐비어나 트러플을 올려 1조각에 28~30달러(약 3만 9천~4만 2천 원)짜리 메뉴를 판매해요. 고급 와인인 샴페인을 치킨에 페어링해 고급화를 꾀하고요. 한편 ‘카페 커머스(Cafe Commerce)’에서는 푸아그라로 속을 채운 치킨 한 마리를 99달러(약 13만 8천 원)에 판매 중이죠. 캐비어, 트러플, 샴페인, 푸아그라 등 고급 식재료들을 활용해 닭고기 요리를 고급화한 곳들이 주목을 받고 있어요.
더불어 세계적인 식재료인 닭고기를 식문화를 경험하는 매개체로 재해석한 곳들도 인기예요. 인도식 버터 치킨을 구현한 ‘아다(ADDA)’, 일본식 야키토리를 재현한 ‘파파 산(Papa San)’ 등이 대표적이죠. 아다의 ‘버터 치킨 체험’은 한정 수량에 사전 예약이 필수로, 고객의 자리로 훈연기를 가져와 버터 치킨이 완성되는 과정을 직접 보면서 먹을 수 있어요. 파파 산의 경우 닭고기를 부위별로 구워먹는 일본의 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요.
최근 뉴욕에서 닭고기 요리가 뜨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렇게 분석해요. 뉴욕의 레스토랑 씬들이 자나치게 고급 아이템에 집중해 사람들이 피로도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친근하고 포근한 닭고기를 고급스럽게 재해석한 요리들에 흥미를 보이는 거죠. 닭고기 요리는 사치스럽지는 않으면서, 동시에 조리법에 따라 충분히 우아한 요리가 될 수 있거든요.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공급자의 수익적인 관점이에요. 기본적으로 닭고기는 비용효율적인 식재료예요. 돼지고기, 소고기 등 다른 육류에 비해 저렴한 데다가 가격 상승률도 안정적이죠.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2025년 6월 소고기와 송아지 고기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0.6% 상승한 반면, 가금류 가격은 2024년 동기 대비 2025년 6월 3.4% 상승하는 데에 그쳤죠. 게다가 닭고기는 각 부위를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어 낭비가 적어 식재료 로스율이 낮은 것도 장점이에요.
닭고기를 활용한 요리 메뉴는 매출 증대에도 도움이 되는데요. 보통 로스트 치킨 메뉴 하나면 1,2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와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로스트 치킨에 곁들일 여러 가지 사이드 디쉬를 추가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 매출에도 도움이 되는 메뉴죠. 셰프들이 통닭을 활용한 메뉴를 개발할 만한 충분한 유인이 되는 거예요. 뉴욕 미식 씬에서 닭고기는 앞으로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요?
[브랜드] 숙박을 뺀 스테이, 외국인 여행객이 줄어도 웃는다
세계여행관광협회(World Travel & Tourism Council)에 따르면, 미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라고 해요. 이를 뒷받침하듯 여행 조사 회사 투어리즘 이코노믹스(Tourism Economics)도 2024년 대비,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8.2%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죠.
이런 전망에 미국 여행업계, 호스피탤리티 업계가 잔뜩 긴장한 상황에서 홀로 웃고 있는 브랜드가 있어요. 뉴욕에 본사를 둔 ‘리조트패스(ResortPass)’예요. 리조트패스는 숙박을 하지 않고도 수영장, 스파, 피트니스 클럽, 사우나 등 호텔의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을 판매하는 플랫폼인데요. 미국의 주요 호텔 체인을 포함해 약 2천 개의 호텔과 제휴되어 있어요.
미국을 방문하는 인바운드 여행객들의 수요가 줄어들자, 호텔들은 내수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했어요. 마침 미국인들 중에는 해외로 휴가를 떠나는 대신, 미국에 머무르기를 택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었죠. 팬데믹 이후 한창 열풍이었던 ‘보복 소비’ 혹은 ‘보복 여행’이 시들해진 반면, 오히려 ‘보복 저축’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거든요.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서 소비보다는 저축을 택하는 이들이 많아진 거예요.
휴가를 떠나지 않은 미국인들은 대신 재충전을 위해 가까운 호텔로 향해요. 숙박이 아니라, 리조트패스를 통해 호텔의 부대시설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거예요. 큰 비용이 드는 장기 휴가 대신, 단기적인 웰니스에 집중하는 방식이죠.
리조트패스는 호텔로부터 예약 건당 수수료를 정산받아요. 리조트패스의 매출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당일치기 휴가객(Daycationer)이라고 해요. 뉴욕 매출의 87%, 베이 에어리어 매출의 86%, LA 매출의 81%가 지역 주민으로부터 발생하죠. 이 기세에 힘입어 리조트패스는 최근 3년 간 빠르게 성장했어요.
리조트패스의 이런 비즈니스 모델과 성장은 호스피탤리티 업계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에요. 부대시설 티켓 운영에는 추가적인 변동비가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마진이 높은 수익원이거든요. 특히 객실 예약률이 떨어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 유휴 자원인 부대 시설을 활용해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게다가 호텔의 가치와도 직결되는 숙박료를 낮추지 않아도 돼요. 오히려 숙박비를 높게 유지해야 부대시설의 가치도 좋아 보이거든요. 고객, 파트너, 본인 3자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구조이기에 업계 전체가 리조트패스의 흥행을 응원하고 있어요.
[디자인] 맥시멀리즘과 미니멀리즘 사이, 가벼운 핸드폰의 등장
‘바보 핸드폰’이라는 의미를 가진 ‘덤폰(Dumb phone)’, 한국에서는 흔히 ‘벽돌폰’이라고 불리는 핸드폰이 있어요. 덤폰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와 연결에 지친 스마트폰 유저들을 위해 탄생한 핸드폰으로, 통화, 문자 등 기능을 최소화해 디지털 디톡스를 도와요.
그런데 2015년, 킥스타터를 통해 일찌감치 덤폰을 선보인 브랜드가 있어요. 뉴욕 브루클린에 본사를 둔 ‘라이트 폰(Light Phone)’. ‘안티 스마트폰’이라는 슬로건 하에 스마트폰의 거의 모든 기능을 없앴어요. 애초에 스마트폰의 보조 기기로 포지셔닝해 주 기기에서 착신 전환 기능만을 지원했죠. 인터넷 접속이나 SNS 등 앱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물론 문자 메시지조차 불가한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지향했어요.
극단적인만큼 반응도 양극화되었어요. 스마트폰의 압박에서 벗어나면서도 여전히 연락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지나치게 기능이 없어 쓸모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죠. 이러한 피드백들을 바탕으로 라이트폰은 점점 진화했어요. 그리고 2017년 정식 출시되었던 라이트 폰 1세대를 시작으로 현재의 라이트 폰 3세대에 이르렀죠. 그렇다면 지금의 라이트 폰 3세대는 어떤 모습일까요?
라이트 폰 3세대는 1세대보다 기능이 추가되었어요. 통화는 물론 알람, 지도, 음악 재생, 메모장, 달력, 팟캐스트 등의 기능이 탑재되었고요. 덕분에 라이트 폰은 이제 보조 기기가 아니라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주 기기가 될 수 있죠.
이렇게 기능을 추가하다가 결국 스마트폰과 같아지는 것 아니냐고요?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요. 라이트 폰에는 원칙이 있거든요. 라이트 폰은 앞으로도 SNS, 인터넷 브라우징, 이메일, 뉴스, 광고 기능은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어요. 스마트폰과 피처폰 사이에서 라이트 폰만의 역할을 찾아가는 중이죠.
디자인적인 관점에서도 라이트 폰은 브랜드만의 가벼운 정체성을 지켜나가요. 미니멀한 외관이나 인터페이스는 물론, 가능한 한 라이트 폰을 오래 쓸 수 있도록 디자인했어요. 소프트웨어를 통해 기존 출시한 모델들을 지원하는 것에 더해 배터리, 화면, USB 포트 등 소모되는 부분들을 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어요. 수리의 편의성을 개선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죠.
라이트 폰 3세대는 진화를 거듭해 왔지만, 여전히 ‘최소한으로 사용하도록 디자인된 기계’로서 ‘가벼운’ 경험을 구현하고 있어요. 라이트 폰의 가치는 특정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초연결된 우리의 삶에서 가벼운 경험을 구현하는 것 자체에 있거든요. 스마트폰의 맥시멀리즘과 덤폰의 미니멀리즘 사이에서 제 자리를 찾아가는 라이트 폰의 다음은 또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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